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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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장차 영업맨으로 시작
“20년 인맥이면 무서울 게 없다”
45세에 오텍 창업해 업계 1위로

캐리어에어컨·냉장 잇단 인수
‘에어컨 2强’ 삼성·LG 맞서
시장점유율 18%까지 높여

‘18단계 풍속’ 선풍기 개발
“작은 변화에도 소비자는 민감”
내년초 고급형 인버터제품 출시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의 수첩에는 국내외 출장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기본이고 중동, 두바이, 터키까지 수시로 출장 계획을 세워놓는다. 어떤 달은 주말까지 출장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 수첩을 본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쉬느냐’고 한마디씩 한다. 그럴 때마다 강 회장은 “지금은 쉴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요즘 시대는 변화가 빨라 잠시 쉬었다간 완전히 뒤처질 수 있다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강 회장이 직원들에게 ‘스피드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다.

영업직원에서 기업 CEO로

강 회장은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연매출 5600억원의 중견 기업을 일궈냈다. 그는 처음부터 사업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한양대 사학과,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2년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서울차체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 회장은 주로 구급차, 냉동탑차, 청소차 등을 만드는 특장차사업부에서 영업을 맡아 영업담당 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1997년 기아차가 부도를 내자 특장차사업부를 분할받아 2000년 만 45세 나이로 오텍을 창업했다.

[비즈 & 라이프]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존재감 있는 기업 되자" 급여 반납해 캐리어에어컨 마케팅
강 회장은 20년 가까이 영업 전문가로 활약하며 쌓은 인맥을 활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해 사업에 도전했다. 그는 60여명의 직원과 함께 휴일을 반납해가며 연구개발(R&D)과 영업에 매진했다. 그 결과 오텍은 창업 2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 국내 특장차업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특장차 수요는 한정돼 있었고, 회사를 키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강 회장은 다른 사업 분야로 눈을 돌렸다. 2007년 터치스크린 전문업체인 한국터치스크린을 인수했고 캐리어에어컨(2011년)과 캐리어냉장(2012년)을 잇따라 사들이며 지금의 오텍그룹을 만들었다. 강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진화를 잘하는 기업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규모만 단순히 키운 게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는 경쟁력을 확대해 건설적인 발전을 이루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재 털어 회사제품 광고

최근 5년간 그의 최대 관심사는 캐리어에어컨을 필두로 회사 규모를 키우는 일이었다.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국내 에어컨 시장의 80% 가까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존재감 있는 기업이 된다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강 회장은 브랜드 인지도부터 넓혀야겠다고 판단했다. 2011년 급여를 반납하고 그 돈으로 광고를 시작했다. 강 회장이 사재를 털며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자 직원들의 사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직원이 한 데 뭉쳐 ‘우리 한 번 해보자’라는 의욕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사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때부터 강 회장은 국내 에어컨 시장에서 이른바 ‘2강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존재감 있는 3위 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에어컨을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은 아니더라도 최소 5초 내 떠오르는 브랜드로 각인시키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는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지금 당장 삼성전자, LG전자를 뛰어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신 우리만의 방식으로 차별화, 특성화를 꾀해 소비자들이 기억할 수 있는 3위로 자리 잡자”고 당부했다. 올초엔 현재 18%인 국내 에어컨 시장 점유율을 2018년 25%까지 끌어올리자는 구체적인 비전도 제시했다.

백화점 가전매장 방문이 취미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 회장이 내세운 경영 전략은 ‘철저한 현장주의’다. 그는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낸다. 국내 백화점이나 양판점 등 가전매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업계 동향을 점검하는 것은 그에게 일상적인 일이다.

취미도 백화점 가전매장 둘러보기다. “아이쇼핑만 해도 배울 게 산더미”라고 강 회장은 말한다.

강 회장은 지난해 중동을 방문했다가 한국산 브랜드 제품에 대한 인기가 많아진 것을 보며 ‘해볼 만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업체들이 내놓은 제품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오른 것을 기회로 삼아 해외 공략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강 회장은 직접 중동 주요 백화점 가전 매장을 돌며 캐리어에어컨 제품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다니기도 했다.

“도전해봐야 성공도 나온다”

직원들은 그의 장점으로 스피드와 실행력을 꼽는다.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실행에 옮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일단 해보자”부터 외친다. 가만히 있으면 혁신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자주 현장을 다녀보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과감히 도전하라는 게 그의 경영 방침이다. 강 회장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는 때를 놓칠 수 있다”며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성공도 나온다”고 말한다.

지난 4월 일본에서 가전업계 동향을 살펴보다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어 곧바로 실행에 옮긴 사례도 있다. 당시 강 회장은 바람세기가 강·중·약 3단계에 불과한 국내 선풍기 시장과 달리 일본에선 사용자의 다양성을 고려해 바람세기를 10단계 이상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선풍기가 많은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바람세기를 미세 조절할 수 있는 선풍기라면 승산이 있어 보여서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서울 양평동 R&D센터부터 찾아 ‘18단 선풍기’를 신규 아이템으로 제안했다. 내년 초엔 바람 세기를 1단계부터 18단계까지 조절할 수 있는 고급형 인버터 선풍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이따금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한결같이 “작은 변화라도 하나둘 성공 사례를 만들며 회사를 키우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가 요즘도 인버터 선풍기의 후속 제품으로 내놓을 새 먹거리를 찾아 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이유다.

■강성희 회장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1981년 한양대 사학과 졸업 △1982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1982년 서울차체 입사 △1999년 서울차체 영업이사 △2000년 오텍 설립(대표이사·회장) △2008년 은탑산업훈장 수상 △2011년 캐리어에어컨 및 캐리어냉장 인수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2015년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