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폐암 치료를 위해 서울 도봉산 기슭으로 거처를 옮긴 부친을 찾은 이종호 JW중외제약 명예회장은 들끓는 파리떼에 아연실색했다. 그러자 부친은 “파리도 생명이다. 죽이지 않고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파리를 잡아 과자봉지에 담았다. 과자봉지 안 파리떼는 저녁 산책길에 ‘방면’됐다.

고(故) 이기석 JW중외제약 창업주의 생명 존중에 대한 소신을 접할 수 있는 일화다. 창업주의 의지 때문에 잘나가던 제품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1960년대에 생산한 쥐약 ‘후라킬’은 회사 경영에 숨통을 터준 효자상품이었다. 어느날 이 창업주는 “쥐를 퇴치해야겠지만 생명을 해하는 약을 굳이 우리 회사가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며 생산 중단조치를 내렸다.

이 창업주는 1910년 3월, 경기 김포군 감정리의 넉넉한 중농집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다. 사장 때도 회사 차를 두고 직원들과 버스로 출퇴근한 적이 많았다. 이 명예회장이 “선친이 단 한번도 새 옷을 입은 걸 본 기억이 없다”고 회상할 정도로 검소했고, 늘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창업주의 이런 몸가짐은 JW중외제약이 3대 70년을 거치며 내부 분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노사분쟁으로 수액 생산이 중단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도 겪지 않았다. 차남인 이 명예회장은 1966년 경영위기 해결을 위한 ‘소방수’로 투입돼 중외제약을 기사회생시켰다. 부친에게 공채 선발을 통한 인적 쇄신 등 인사권 전권을 부여받은 이 명예회장은 최현식 전 부회장(1966년 공채 1기) 등 유능한 신진을 수혈, 제2의 창업에 나섰다.

이 명예회장은 창립 70주년인 지난달 장남인 이경하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 명예회장은 “수액 개발은 도전과 혁신의 역사”라며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생명수를 만든다는 생명 존중의 사명감과 개척정신을 변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