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 기업'의 도전과 열정
(2) 아모레퍼시픽

성실·신용 중시한 창업 일가
[광복 70년,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아모레퍼시픽, 위기 때 더 빛나는 '개성상인 DNA'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가 설립된 것은 1945년. 하지만 이 회사의 뿌리는 이보다 앞선 1932년 시작했다.

고(故) 서성환 창업주의 모친인 고 윤독정 여사가 여성용 머릿기름(동백기름)을 판매하던 ‘창성상점’이었다.

당시에는 물자가 부족해 모든 제조업종에서 원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동백나무는 남부지방 해안가에서 자라 개성에선 열매를 공급받기가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좋은 원료에서 최고 품질이 나온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은 윤 여사는 고품질의 동백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 수백 리 해안지역도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어머니의 일을 돕던 서 창업주 역시 신용과 성실을 중시하는 ‘개성상인 DNA’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1943년 일제에 징용을 당해 중국으로 건너갔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개성으로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몇 달간 중국을 여행하면서 아시아의 여러 문물이 뒤섞이며 교류하는 현장을 본 서 창업주는 아시아의 미(美)를 태평양 너머 서구 세계에까지 전파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란 꿈을 갖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1945년 ‘태평양’이라는 간판을 달고 화장품사업을 재개했다.

서 창업주는 직원들과 함께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미군부대 매점(PX)에서 유출된 화장품과 밀수품이 대거 유통돼 국내 화장품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정쩡한 제품을 팔아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직원들을 독려해 가며 ‘품질 우선주의’를 꺾지 않았다.

1960년대 활동한 방문판매 카운셀러

1960년대 활동한 방문판매 카운셀러

태평양은 1954년 화장품 연구실을 개설하고 1959년 프랑스 코티와 기술제휴를 맺는 등 일찌감치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했다. 1964년 방문판매와 가격정찰제를 도입해 혼탁했던 국내 화장품시장에 혁신적인 유통체계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방문판매용으로 개발된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가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2002년 회사 이름이 아모레퍼시픽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서 창업주의 차남인 서경배 회장은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태평양 경영관리실 과장으로 입사했다. 1990년대 초부터 비주력사업을 모두 매각하는 그룹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2006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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