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나쁜 일자리란 없다
국내 임금 근로자 수는 1800만명 정도다. 정규직 1200만명, 소위 비정규직 600만명으로 보면 된다. 이 대강의 숫자를 보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답이 나온다. 한 번 뽑으면 해고가 힘들어 기업들이 채용을 기피하는 정규직이 아니라, 필요한 기간 동안만 계약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된다.

실상은 어떤가. 비정규직은 어렵고 힘들고 비참하게 일하는 ‘나쁜’ 일자리이기 때문에 절대 늘려선 안 된다고들 생각한다. 이건 노동계가 만든 잘못된 프레임이다. 그 부정적 영향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정부도 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쉽게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애써 외면하고 만들기 어려운 정규직 일자리만 늘리려다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게 고용률 60.9%의 현실이다.

'비정규직=비정상' 시각이 문제

유학 가기 전에 석 달만 일하겠다는 학생, 육아를 위해 오후 네 시간 정도만 근무하길 원하는 주부, 낮에는 집안일을 돕고 매일 밤 경비 근무만 서겠다는 청년, 또는 주말에만 출근하려는 사람들…. 이들이 원하는 것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과연 ‘나쁜’ 일자리인가.

비정규직에 대한 이런 편견은 노동계가 전략적으로 만든 것이다. 비정규직은 법률 용어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라는 뜻으로,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강조하기 위해 노동계가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 통념이 되다 보니 정부도 비정규직을 억제하고,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는 데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있던 일자리까지 날려 버리고 있다.

정규직 외에도 일자리는 다양한 형태로 계속 생겨난다. 임시직, 계약직, 파견직, 시간제, 일용직, 호출직 등이다. 계약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도 부담이 적고 저숙련 근로자도 문턱이 낮아 취업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이런 모든 일을 비정규직이라고 배척한다면 일자리를 늘릴 방법은 없다.

파트타임,미니잡도 소중한 직업

작은 일자리라도 우선 많이 늘리자는 게 2000년대 초 독일 ‘하르츠 개혁’의 핵심이었다. 당시 하르츠 독일노동개혁위원장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mini job)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니잡은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면서 한 달 급여가 400유로(약 51만원) 미만인 일자리다.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됐던 주부들이 이 미니잡에 뛰어들었다. 현재 독일 근로자의 20%인 740만명이 미니잡에 종사하고 있다. 하르츠 개혁 직전인 2004년 64.3%였던 고용률은 4년 만에 70%를 넘어섰고 2013년 말에는 73%까지 개선됐다.

최근 미국에서도 파트타임 일자리를 기업들이 앞장서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스타벅스 월마트 등 17개 기업이 수습, 인턴, 파트타임 등 새 일자리 1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나섰다.

미니잡이나 파트타임이나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비정규직이고 ‘나쁜’ 일자리다. 그러나 독일의 예에서 보듯 작은 일자리라도 창출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보람을 찾고 실력을 기르고 또 훗날을 도모한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6개국의 고용률 제고 성공사례는 시간제 임시직 등을 늘린 것이 핵심이었다.

나쁜 일자리는 없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자리가 있을 뿐이다. 선택의 문제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낡은 이분법을 버려야 새 일자리를 만들 길이 보인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