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싱크홀로 빠져드는 제조업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는 한국 제조업이 당면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는 곧 3조원대의 대규모 손실을 실토한다. 해양플랜트 사업에 켜켜이 쌓인 손실을 올 2분기에 모두 털어내겠다는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 아니 주인이 주인 같지 않은 회사라고 하지만 정말 제멋대로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얘기는 않는다. 감원 보도가 나오면 회사 측은 물론 대주주인 산업은행도 부인한다. 실사를 해봐야 알겠단다. 무책임의 극치다.

적자 나도 구조조정 불가

지난해 현대중공업도 그랬다. 3조원대 적자가 났지만 근로자들의 급여는 단 한 푼도 깎지 못했다. 노조는 회사 측의 인력 구조조정에 파업으로 저항했다. 노조는 올해도 파업을 결의했다. 올 2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회사의 실상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항변은 무지의 소산이다. 열심히 일해도 망하는 기업들은 부지기수다. 임금이 생산성을 추월하면 어떤 기업도 버텨낼 수 없다.

한국 제조업에 썩는 내가 풀풀 난다. 매출신장률 수출증가율 노동생산성 등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치지만 수술대도, 집도의도 찾아볼 수 없다. 주식시장은 일찌감치 징후를 알아차렸다. 전자 자동차 기계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을 대표하는 간판주들은 줄줄이 내리막길이다. 외환위기(1998년)를 벗어나고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극복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업종들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한 한국 제조업은 국민의 자랑이자 일자리의 보고(寶庫)였다.

하지만 이제 다시 위기가 닥친다면 제조업부터 굉음을 내며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분수에 넘치는 호사(豪奢)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도로를 가득 메우는 행락 차량, 연휴 때면 수만명의 해외여행객들로 미어터지는 공항, 연간 20만대를 넘어서는 수입자동차 판매, 적자가 나도 월급을 깎지 않는 회사들, 국가 재정이야 축이 나든 말든 해마다 늘어나는 무상복지….

저성장에도 혁신 불가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기반이 고사(枯死)해 가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생활이 지속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한숨이 난다. 이미 우리 제조업의 몸은 천근만근이다. 대규모 생산설비는 가동률 하락으로 감가상각비 건지기도 버겁다. 과거 높은 생산성을 기반으로 다락같이 오른 인건비는 통제 불능이다. 기업들의 고정비용은 비타협적인 노조집단과 정부 주도의 ‘임금 드라이브(소득주도 성장정책,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속수무책으로 늘어나고 있다. 생산성을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여건이다. 구조조정이 안되니 혁신이라는 새 살이 돋아날 수도 없다.

유일한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던 4대 구조개혁(노동 공공 금융 교육)은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어김없이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총론은 공감하지만 총론 구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각론들의 백가쟁명이 펼쳐진다.

그 사이에 우리 발밑은 계속 내려앉고 있다. 언젠가 거대한 싱크홀이 우리 앞에 입을 떡 벌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과거 구조조정에 저항하기 위해 국회로 달려간 기아자동차를 끌어안고 자폭한 외환위기 이전 경제의 길로 돌아가고 있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