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나이키 등 기업 맞춤형 향수로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 휩쓸다
브라질 사람들은 만나서 인사할 때 서로 안으며 볼을 맞댄다. 자연스럽게 상대방 몸에서 나는 향을 맡게 된다. 무더운 날씨를 탓하며 상대방에게 땀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은 큰 결례다. 브라질의 향수나 탈취제 소비량이 세계 1위인 까닭이다. 2억명이 넘는 인구 중 86%가 향수를 즐겨 사용한다는 조사도 있다.

윤용섭 비오미스트 사장은 냄새에 민감한 브라질 시장의 특성을 파고들었다. “향수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지만 향수 소비자가 이렇게 많다면 틈새시장도 그만큼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윤 사장은 “브라질 국민은 인사를 나눌 때 상대방의 향수 브랜드까지 눈치챈다. 후각이 발달한 브라질인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이키 향을 만드는 기업

[한계돌파] 나이키 등 기업 맞춤형 향수로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 휩쓸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게 향기 마케팅이었다. 기업별로 맞춤형 향기를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업이었다. 예를 들어 나이키 매장에 나이키에 어울리는 향기를 분사기로 뿌려주는 형태였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윤 사장은 2000년에 비오미스트라는 회사를 세웠다. 브라질 내 최초의 향기 마케팅기업이었다. 초기 반응은 별로였다. 브라질이 향수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고 향기 기억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 좋지만, 아직 기업 이미지에 맞는 향수를 생산해야 한다는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해서였다. 소규모 화장품가게나 미용실 정도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돈이 될 만한 큰 기업들은 시큰둥했다.

윤 사장은 “향기 마케팅사업의 필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호응이 없었다”며 “5년 정도는 ‘맨땅에 헤딩’하며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경기가 활기를 띠면서였다. 경제가 호황기로 접어들고 기업 간 판매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기업들이 향기 마케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키를 시작으로 홀리데이인호텔과 브라질 대형 은행인 브라데스코도 “우리만의 향기를 만들어 달라”고 윤 사장을 찾았다. 향수를 만드는 브라질 최대 토종 화장품기업인 나투라까지 비오미스트에 ‘러브콜’을 보냈다.

윤 사장은 “브라질에 있는 모든 나이키 매장이나 나투라 매장이 우리와 거래한 뒤 매출이 늘었다”며 “심지어 옷이나 화장품을 사러 왔다가 그 매장의 향기를 내는 향수를 사고 싶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자 윤 사장은 2010년 현지 향수 제조업체인 홀리스를 인수했다.

비오미스트와 홀리스는 역할 분담을 했다. 비오미스트가 맞춤형 향기를 개발하면 홀리스는 그에 맞는 향수를 생산했다. 창업 15년 만에 브라질 내 2000개에 가까운 기업 매장의 향기를 관리하게 됐다. 지난해 매출은 200만달러. 향기 마케팅회사로서는 브라질 내 매출 1위였다.
[한계돌파] 나이키 등 기업 맞춤형 향수로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 휩쓸다
“현지 문화를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

윤 사장은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KOTRA 출신이다.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칠레와 브라질에 있는 KOTRA 무역관에서 근무했다. 중남미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언제 독립하느냐가 문제였다. 시기를 저울질하던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사표를 냈다. 직장을 계속 다니기도 힘든 때에 창업하는 것은 무리라며 주위 반대가 심했다.

윤 사장은 자신 있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제품을 잘 팔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에 헬멧 등을 판매해 재미를 봤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한때 스티커 사진을 찍는 장비를 브라질에 들여왔다. 한국에서 한창 스티커 사진 찍기가 인기였던 때였다. 브라질 사람들도 “이게 뭐야?”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용객이 적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과 달리 브라질에선 친하다고 같이 사진을 찍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돈만 날리고 이내 사업을 접었다. 브라질 문화를 몰랐던 것이다.

장미향도 그런 예다. 비오미스트를 설립한 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장미향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업도 장미향을 택하지 않았다. 브라질에선 장미향 하면 장례식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브라질에서 20년을 살고 장례식장에 장미가 있는 걸 봤지만 장미향을 맡으면 장례식장을 연상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마스크팩을 들여오려 할 때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한국에서 마스크팩을 공급해줄 업체까지 선정했지만 이내 접었다. 여자가 집에서 마스크 같은 걸 하고 있으면 “난 당신이 맘에 들지 않으니 이혼해달라”는 의도로 받아들인다는 브라질 특유의 문화를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기업 99% 향기마케팅 아직 몰라…큰 기회

진짜 위기는 향기 마케팅사업에 뛰어든 직후에 왔다. 제조 원가를 낮추기 위해 한국에서 수입하던 향수 원액을 브라질에서 직접 조달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비오미스트의 동업자였던 대리점 사장 중 한 명이 반기를 들었다. “내가 윤 사장 대신 한국에서 향수를 수입해 보급하겠다”며 경쟁자로 돌변했다. “브라질에서 생산하는 향수 원액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논리였다. 윤 사장은 17개 비오미스트 대리점 사장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복잡한 브라질 통관 절차와 높은 관세를 고려하면 브라질 생산이 정답”이라고 설득했다. 다행히 모든 대리점이 윤 사장 편에 섰다. 윤 사장은 생산 원가를 낮추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윤 사장은 2000년 창업 후 위기를 극복하며 여러 차례 외도를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를 맛봤다. 그의 결론은 한우물 전략이었다. 윤 사장은 향기 마케팅사업에 집중키로 했다. 현재 브라질 향기 마케팅 시장엔 미국의 센티에어, 호주의 에어아르마 같은 글로벌 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윤 사장은 이들과 경쟁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브라질에 특화된 향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다 향기를 뿌리는 분사기의 품질 면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오미스트는 아직 상파울루를 비롯한 일부 대도시에만 진출해 추가로 개척할 시장이 많다.

윤 사장은 “브라질 기업 중 1%만이 향기 마케팅을 도입하고 있다”며 “나머지 99%의 기업을 파고들면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브라질엔 얼리어답터가 없다…때 기다릴 줄 알아야 성공”
김건영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장


브라질은 소비 왕국이다. 세계 6위 규모인 브라질 국내총생산(GDP) 중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3%다. 정보기술(IT) 강국이기도 하다. 국민 1인당 인터넷 사용시간은 월평균 48시간으로 세계 1위다.

당연히 새로운 제품을 빨리 받아들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처럼 ‘얼리 어답터’가 넘쳐나야 마땅하지만 신제품 소비 속도는 늦다. 김건영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한국에서 뜬 제품이라고 무턱대고 브라질에 가져왔다가는 큰코다치기 일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노래방이다. 한국에서 노래방이 뜨자 한국 사업가들은 199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브라질에 노래방 기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브라질은 춤을 즐길 뿐 노래하는 문화가 없다. 처음에 노래방사업을 시작했던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고 브라질이 영원히 노래방을 외면하진 않았다. 1996년 브라질 TV에서 노래방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노래방이 급속도로 퍼졌다. 대중 앞에서 노래하기 꺼리던 브라질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즐기기 시작했다.

기초 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화장품 소비량이 세계 3위인 만큼 기초 화장품이 잘 팔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참존화장품을 선두로 많은 한국 화장품업체가 브라질 기초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시장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소득 수준이 기초 화장품까지 구매할 정도가 되진 않아서다. 2000년대 들어서야 기초 화장품이 조금씩 팔렸다. 비비크림도 덩달아 잘나가기 시작했다.

김 관장은 “결국 오래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게 브라질 시장의 특성 중 하나”라고 말했다.

상파울루=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