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서 퇴짜 맞은 디지털 모험가, '러시아판 구글'로 검색시장 석권하다
세계 인터넷 검색시장의 절대강자인 구글도 넘지 못한 벽이 있다. 러시아 최대 검색 엔진·포털사이트인 얀덱스다. 구글은 유럽 검색시장의 90%, 미국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다르다. 러시아 검색시장에서 6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얀덱스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다. 한때 구글에 인수를 거절당했던 얀덱스는 이제 ‘러시아판 구글’로 불린다.

아르카디 볼로즈 얀덱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척박한 러시아 정보기술(IT)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출신으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비교되기도 한다. 추진력 있고 과감한 디지털 모험가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몰두하고 단기 실적보다 장기 투자에 주력하는 점도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중고 컴퓨터 매매상에서 ‘IT 거인’으로

볼로즈 CEO는 1986년 러시아 국립 굽킨 석유가스대를 졸업했다. 수학을 전공했지만 학창시절 때 공부보다는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첫 사업은 중고 컴퓨터 매매였다. 학교 근처 주차장에서 해외에서 사온 중고 컴퓨터를 판매했다. 중고 컴퓨터 구매 자금은 러시아 농산품을 해외에 팔아서 마련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생으로선 꽤 많은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볼로즈 CEO는 이때의 경험으로 어떤 사업이든 확신을 갖고 추진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전했다.

컴퓨터 매매 사업을 하면서 그는 IT 기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얀덱스 창업 전에도 그는 다수의 IT 기업을 세웠다. 무선 네트워크 기술 전문 기업인 인피넷와이어리스와 네트워크·이동통신 설비 공급 기업 콤프텍 등이다.

1989년 콤프텍을 창업한 뒤 볼로즈 CEO는 검색 알고리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훨씬 전이었다. 이런 관심은 1990년 검색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아르카디아 창업으로 이어졌다. 1993년부터는 그의 학교 친구이자 2013년 위암으로 타계한 일리야 세갈로비치 얀덱스 공동창업자와 검색 엔진 개발에 주력했다. 이때 개발한 게 비구조화 정보 검색엔진이다. 문서처럼 데이터베이스로 저장되지 않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다.

검색 엔진의 성장 잠재력과 사업성에 확신을 갖고 그는 1997년 얀덱스를 세웠다. 얀덱스라는 기업명은 ‘여기 또 다른 검색기(yet another index)’에서 따온 말이다. 10여년간 얀덱스는 쉼없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성장했다. 이제는 인터넷 검색과 메일, 뉴스, 동영상, 전자상거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됐다. 얀덱스의 임직원 수는 5000여명이다. 러시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터키에서도 서비스하고 있다.

얀덱스의 러시아 검색 시장 점유율은 2위 구글의 2.5배에 달한다. 월간 얀덱스 방문자 수만 7000만명에 이른다. 검색부문과 방문자 수 등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9억240만달러(약 1조74억원)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 러시아 대기업은 석유와 광물 등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정치인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사세를 키우는 기업도 많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얀덱스는 아무런 정치적 배경 없이 천연자원이 아닌 순수 IT만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여느 러시아 기업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지고는 못 사는 전형적인 승부사

그의 승부사적인 기질도 유명하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목표가 생기거나 도전을 받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볼로즈 CEO의 성격을 “원하는 것이 있으면 고집스러울 만큼 밀어붙인다”고 묘사했다.

대표적인 일화가 구글과의 맞대결이다. 구글이 러시아 진출을 추진하던 2005년. 볼로즈 CEO는 구글에 얀덱스 인수를 제안했다. 구글은 보기 좋게 퇴짜를 놨다. 제안한 인수가격이 너무 비싼 데다 굳이 얀덱스를 통하지 않고서도 러시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구글에서 퇴짜를 맞은 그는 더 독하게 얀덱스를 키웠다. 철저한 현지화로 세계 검색시장을 장악한 구글이 러시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얀덱스 검색 기능을 강조하던 구글과 달리 부가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세웠다.

2006년에는 웹 방송 시스템을 활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했다. 이 방송은 얀덱스를 국민 검색엔진으로 발돋움시키는 계기가 됐다. 인연과 관계를 중시하는 러시아인의 특성을 감안해 친구 찾기 기능을 사이트 중앙에 배치했다. 결제대행사업부 얀덱스머니를 세우고 현금카드를 활용해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노력으로 얀덱스는 램블러와 메일닷루 등 포털 사이트들이 난립하던 러시아 검색시장의 왕좌에 올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얀덱스는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인의 습성을 철저하게 파악해 현지 시장을 공략했다”며 “복잡한 러시아어 문법으로 인해 구글의 다양한 콘텐츠가 러시아어로 제대로 바뀌지 않은 점도 얀덱스의 경쟁력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사업 확장을 위한 인수합병(M&A)에도 거침없었다. 기존 친구 찾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2007년 러시아 소셜네트워크 기업 모이크루그를 사들였다. 2008년에는 러시아 도로 교통정보 서비스 기업 SMI링크를 인수했다.

그는 사리사욕이 없는 경영인으로도 꼽힌다.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볼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 2013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오를 만큼 막대한 재산(12억달러)이 있지만 별도로 비서를 두지 않는다. 러시아 재계에 만연해 있는 ‘족벌 경영’도 거부하고 있다. 큰아들이 있지만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며 직접 일자리를 구하게 했다.

영어판 사이트 성공은 남은 과제

얀덱스는 러시아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2011년 5월 미국 나스닥에 입성했다. 상장 첫날 얀덱스 주가는 공모가보다 55.4% 급등한 38.84달러에 장을 마쳤다. 당시 기업가치만 80억달러에 달했다. 얀덱스는 상장으로 13억달러를 끌어모아 IT 기업 중 2004년 구글(17억달러) 이후 최대 규모로 증시에 데뷔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계도 있다. 얀덱스 방문자 10명 중 7명은 러시아인이다. 영어 기반의 검색시장에서는 입지가 약하다는 얘기다. 얀덱스에 영어판 사이트의 성공은 아직 남은 과제다.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운 사업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기반에서 모바일 서비스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서비스를 개선하고 지도 개발을 통한 실시간 서비스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볼로즈 CEO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늘 “얀덱스의 기술력은 어느 기업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며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의 새로운 기회를 끊임없이 찾아서 진보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