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영권 방어장치에 관한 국회의 헛발질
최근 삼성물산이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주주총회 표대결을 앞두고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했다. 바로 6일 후 국회에서는 기업이 보유 자사주를 경영권방어를 위해 타인에게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재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럼 왜 국회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에서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장치로 활용되던 ‘자사주 매각을 통한 우호지분 확보’를 무력화시키려 하는가. 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자사주를 이용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방지해 주주평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살펴보면, 적대적 M&A시장이 발달해 있는 환경에서는 경영진은 실적이나 기업가치가 낮을 경우 자신들이 축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사전에 사익추구가 아닌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즉, 적대적 M&A의 위협이 대주주 혹은 경영자에 대한 ‘시장의 규율’로 작동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대주주 혹은 무능한 경영진을 축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서 왜 다양한 경영권 방어장치를 제도화해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지켜주고 있을까. 시장기능에 반하지 않는 몇몇 경영권 방어제도는 이를 도입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가치 제고와 유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방어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이거나 유지시켜줄 수 있는 경우는 많다. A가 B기업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는 B기업의 이사진이 A의 제안을 놓고 판단했을 때 A가 B기업을 인수한다면 장기적으로 B의 기업가치를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자. 혹은 이들 이사진이 내부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현재 추진 중인 투자 프로젝트로 인해 B기업의 1년 후 기업가치가 현재보다 월등히 높아져 현재의 인수제안 가격이 미래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낮은 가격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하자.

이럴 때 B기업 이사들은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사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없다면 기업가치를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는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사들의 판단기준은 모든 주주의 이익이지 대주주의 이익이 돼서는 안 된다. 이 기준을 위배한 이사에 대해서는 대표소송을 통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나 정부가 기업을 적대적 M&A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것은 잘못된 정책방향이다. 경영권 방어장치는 무조건 대주주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치 유지와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는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에게 득이 된다.

현재의 국내법 제도 하에서는 대주주 혹은 경영권을 가진 사람이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여 자신의 지분을 높이는 것 이외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뾰족한 수단이 없다. 기업가치 유지와 제고를 위한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장치가 결여된 기형적인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만약 국회가 법률을 통해 기업의 자사주 처분을 통한 경영권 방어를 금지한다면, 국회와 정부는 좀 더 시장친화적이고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경영권 방어제도의 입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름과는 달리 시장기능에 가장 부합하면서 현재 상장돼 있는 기업들도 무리없이 도입할 수 있는 ‘독약처방(poison pill)’ 같은 제도의 도입을 적극 고려할 시점으로 보인다.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객원논설위원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