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데스크 시각] 투자개방형 병원이 대세다
‘일류의 의료기술도 삼류로 만들어 버리는 의료시스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드러낸 우리 의료산업의 현주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0개 정책과제 제언에서 지적한 것처럼 최고의 의료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낙후한 의료시스템이 상황을 악화시킨 셈이다. 메르스 확산을 도운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과 다인실 병상 등 후진적 의료시스템을 이참에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의료산업을 옥죄는 규제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은 10여년째 막혀 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2002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밝힌 ‘동북아 허브구상’에서 시작됐다. 두뇌가 몰리는 의료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의료산업 옥죄는 규제

이후 정부가 세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널리 퍼진 ‘의료 민영화 괴담’이 한몫했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허용되면 상업화로 인해 의료비가 폭등하고 현행 건강보험 체계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다. 의료산업 발전이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의 ‘프레임 전쟁’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 좌파 시민단체 주장처럼 ‘의료 민영화 괴담’의 주범일까. 세계에서 이런 논란으로 시끄러운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이미 오래전에 의료산업의 대세가 됐다. 무상의료 국가인 스웨덴에도 투자개방형 병원들이 많다. 종합병원급이 스톡홀름에만 네 개나 있다. 소비자 만족을 내세우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병원 간 서비스 경쟁에 불을 지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비영리병원들의 환자 대기시간이 줄고 서비스가 향상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에선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태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외국인이 태국 병원 지분의 49%까지 소유할 수 있다. 수도 방콕은 세계 최대 의료관광도시다. 2013년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250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환자가 태국을 찾았다. 태국이 1년간 벌어들인 의료관광 수입은 43억달러를 넘는다.

의료는 고부가가치 산업

중국도 20여년 전 투자개방형 병원을 허용했다. 지금은 병상 50실 이상 중대형 병원의 47%가 투자개방형 병원이다. 중국 의료계 관계자들은 “투자개방형 병원들이 지속적인 원가절감 노력으로 의료비를 할인해 일부 분야에서는 비영리병원보다 오히려 싸다”고 말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선진국으로 통하는 일본과 싱가포르도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규제가 없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환자에게 비자도 면제해준다.

세계의료관광협회 조사 결과 매년 의료관광을 위해 10억명가량이 국경을 넘는다. 2013년 한 해 동안 의료관광으로 약 120억달러가 지출됐다. 세계 의료관광시장은 2019년까지 연평균 17.9% 성장해 325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의료산업은 이처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다. 삼성서울병원 규모 병원이 생기면 1만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남긴 ‘교훈’이 잊혀지기 전에 정치권은 투자개방형 병원 허용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의료산업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태철 중소기업부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