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과학으로 생명 치료, 연주로 영혼 치유하는 첼리스트 꿈꿔요"
지난달 21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음악회. ‘클래식 음악계의 대부’로 불리던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금호 영재 출신 연주자 세 명이 무대에 올랐다. 피아니스트 손열음(29)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0), 첼리스트 고봉인(30)이었다. 이 중 고봉인을 낯설어하는 관객이 많았다.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는 손열음 권혁주와 달리 고봉인은 4년 만에 연주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人사이드 人터뷰] "과학으로 생명 치료, 연주로 영혼 치유하는 첼리스트 꿈꿔요"
그는 첫 독주자로 나서 가스파르 카사도의 ‘독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풍부한 감정 표현과 절제된 연주를 오가며 짙은 비애감을 느끼게 했다. 손열음 권혁주와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3중주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를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울림을 남긴 그의 연주에 “고봉인의 첼로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현장에서 오갔다.

고봉인이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까닭은 다소 특이하다. 그동안 생물학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학업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첼리스트이자 과학자인 그를 최근 서울역 인근에서 만났다. 대전 KAIST에서 박사후과정을 이수하는 그는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 연주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하버드·프린스턴대에서 생물학 전공

겉보기에는 여느 이공계 학생과 다를 바 없는 수수한 남방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안경을 쓴 단정한 외모도 공부 잘하는 대학원생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면에는 음악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 고봉인은 4년 만의 무대가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동안 연구에 전념하느라 연주가 뜸했는데 이번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밤에 잠도 못 이뤘어요. 이런 연주활동을 최근 몇 년간 왜 하지 않았을까 후회했죠.”

그는 연주활동을 본격 재개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가한다. 8월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11월에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이 잡혀 있다. 의과학 연구도 계속한다. 프린스턴대 박사과정 때는 유방암 전이의 열쇠를 찾는 연구를 진행했고, KAIST에서는 박사후과정을 밟으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고봉인이 두 갈래 진로를 밟게 된 데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암 성장과 전이에 핵심적인 인자를 발견하고 이를 억제하는 차단제를 개발해 암 치료제 연구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고규영 교수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는 “과학자인 아버지는 제가 첼로를 배운 뒤 음악가의 길을 걷기를 바랐고, 피아노 전공자인 어머니는 과학자의 삶을 살기를 원했다”며 웃었다.

[人사이드 人터뷰] "과학으로 생명 치료, 연주로 영혼 치유하는 첼리스트 꿈꿔요"
차이코프스키 청소년콩쿠르 우승

고봉인이 첼로를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누나가 어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부러워서였다. 음악 전공자인 어머니는 그에게 따로 음악교육을 시킬 계획은 없었다.

다른 전문 연주자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금세 첼로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듬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어린이 대상 예비학교 시험을 쳤다. 그럴싸한 곡은 연주할 수 없었다. 겨우 1년 남짓 준비했기 때문이다. “예비학교에 가려는 친구들은 적어도 하이든 협주곡 정도는 준비해 왔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친구들이 1학년 때 이미 뗀 쉬운 곡을 준비했죠.”

당시 한예종 교수이던 첼리스트 정명화는 그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기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음악성을 높이 샀다. 두세 명 뽑는 예비학교 시험에 합격해 5년간 정명화에게 배웠다. 첼로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996년 경향이화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제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청소년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위에 올랐다. 정명화의 조언으로 독일 베를린음대로 유학해 거장 다비드 게링가스 교수의 최연소 제자로 들어갔다.

하버드대에 진학해서는 요요마와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대여한 악기를 금호에 돌려준 뒤 요요마에게서 그가 쓰던 몬타나냐 복제품을 물려받아 썼다. 협연을 하기도 했다. 고봉인은 한국 작곡가들의 음악에 애착을 지니고 있다. 2008년에는 평양에서 윤이상관현악단과 작곡가 윤이상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했다. 4년 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는 재독 작곡가 박영희 씨의 ‘만남I’을 아시아 초연했다. “관객에게 한국 작곡가의 작품을 알리는 것을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한국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평생 할 일이라 생각하면 조급증 덜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고봉인은 “시간을 쪼개야 해서 바쁘기는 하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둘 다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하려고 해요. 한 분야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분야에서 풀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람들의 편견입니다.”

‘언제 첼로를 그만두느냐’ 혹은 ‘언제 첼로에만 집중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를 첼리스트의 길로 이끈 정명화도 처음에는 고봉인의 ‘양다리’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지금은 많이 인정해 주세요. 정명훈 선생님(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만날 때마다 진로를 결정했느냐고 여전히 진담 반 농담 반 말씀하시지만요.”

은사들은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하지만, 단순한 호기심만 갖고 그의 삶을 넘겨짚는 이들이 있다. 지난달 같은 금호 영재 출신인 손열음이 첫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출간했다. “사람들이 열음이가 책을 썼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더라고요. 음악가들이 글을 쓰지 말란 법은 없는데도요. 좋아하고 재능 있는 분야가 있으면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정해진 길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봉인은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넘겨짚는 건 무의미한 일이고, 일찍 한 가지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꿈인지 모르잖아요. 부모님이 의사가 되라고 해서, 음악가가 되라고 해서 정해진 길만 따라가는 인생은 경직된 삶입니다. 다양한 시도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해도 서로서로 눈치를 주는 분위기예요.”

누구나 24시간의 하루를 살아간다. 재능이나 의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두 가지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하니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한 가지만 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못 해요. 제가 음악만 하는 사람처럼 하루종일 연주할 수는 없겠죠. 매 시점 중점을 두는 분야를 바꿔가며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려고 합니다. 마라톤처럼요. 둘 다 평생 함께할 일이라 생각하면 조급증이 덜합니다.”

꿈을 묻자 “의과학자로서 몸을 치료하고, 연주로는 영혼을 치유하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과학 분야에서는 좋은 팀을 구성해 서로 배우며 연구활동을 할 미래가 기대돼요. 첼로를 통해서는 악기가 무엇인지 잊을 정도로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하버드 명예박사 수여식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 연주
악기 빌려준 요요마와 음악·진로 고민 상담도


첼리스트 정명화와 요요마는 고봉인의 음악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봉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비학교에 들어가 정명화에게 받은 첫 레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선생님은 목소리를 많이 사용하셨어요. 첼로로 가르칠 것은 첼로로 가르치지만, 타이밍과 음색 등 음악적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직접 노래를 하시는데, 그 모습에 반했어요. 악기도 그렇지만, 목소리에는 성격이 바로 드러나잖아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너무나 좋은 분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정명화에게도 애틋한 제자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은 그를 기자간담회장에서 만나 고봉인에 대해 물었다. 대번에 “특별한 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예술감독은 “한예종 예비학교 입학 당시 준비한 곡은 쉬웠지만, 그 안에 숨겨진 잠재력이 상당했다”고 회고했다.

요요마와는 독일에서 처음 만났다. 다비드 게링가스 베를린음대 교수를 사사할 때 친구와 공연을 보러 갔다가 백스테이지에서 요요마를 만났다. “음악을 한다고 하니 ‘내 앞에서 첼로를 연주해보겠느냐’고 했는데 그게 첫 만남이었죠.”

고봉인은 미국 하버드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 연주자로 참석해 요요마와 마찬가지로 바흐 무반주 조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요요마가 악기를 빌려준 뒤로는 종종 만나 진로와 음악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얘기를 나눴다.

“선배들을 본받아 훌륭한 연주를 하고 싶어요. 첼로가 무대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연주를 하기 위해 매일 노력합니다. 어떤 악기를 통해 소리가 나오는지 잊고, 온전히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글=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