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작은 정부'에 손들어준 영국 국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 7일 치러진 총선에서 조용한 보수의 표심을 간파하지 못한 여론조사의 예측을 뒤엎고 단독 과반을 얻는 압승을 거뒀다. 보수당이 승리한 이유는 집권당으로서 경제 성적표가 좋았기 때문이다. 금융이 주력산업인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성장률이 -6%대로 떨어졌고 대량실업 사태를 겪었지만, 최근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성장이 놀라운 것은 정부의 긴축정책 아래서 이룩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긴축정책은 경제회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며 국제 채권단의 요구에 맞서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영국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나라다. 그는 국부론에서 “빵집 주인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개인적 탐욕에서 다른 가게보다 싸고 맛있는 빵을 팔지만, 그의 기업가적 노력은 많은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도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설파했다. 그러므로 국가는 기업의 이득 추구행위에 개입하지 말고 성장과 고용의 엔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세계 영토의 4분의 1을 차지한 대영제국 시절에도 국민총생산에서 정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하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낮았고, 인도의 식민지 경영도 대부분 동인도회사가 책임지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런 ‘작은 정부 전통’ 때문에 오늘날 영국은 재정지출을 줄이고도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국가 유전자를 갖게 된 것이다.

보수당 정부는 노동당이 남긴 많은 국가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지속적으로 줄였고, ‘책임예산헌장’을 제정해 적자예산의 수립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며, 2017년에 균형예산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난 임기에는 탈(脫)규제로 100억파운드 규모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향후 200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실현된다면 성장의 혜택이 더욱 가시화될 것이다.

성장과 고용은 쉽사리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보수당 정부는 영국 경제에 성장과 고용의 엔진을 달기 위해 앞으로 2년간 정부예산을 2% 일괄 감축하면서도 과학기술, 교육훈련, 물류기반은 감축 예외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독일식 중소기업 중심의 발전모델을 정착시키기 위해 창업에 대한 지원과 500대 효율적 기업의 선정 및 지원 정책을 추진, 영국의 경쟁력을 다변화하려고 한다.

건전재정과 경제성장의 동시 달성 가능성을 보여준 영국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국가 부채는 미래의 위기에 사용할 정책수단이다. 맑은 날에 장마를 대비해야 한다. 세계경제 편입을 통한 발전전략을 추구하는 한국은 글로벌 경제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건전재정은 필수적이다. 또 남북통일은 거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우리의 미래과제다. 독일은 통일 당시 흑자재정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재원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의 선거가 인기영합적 경향을 보이면서, 국가재정에 대한 우려를 초래하고 있다. 유럽은 전후 고도성장 시기에 선심성 복지모델을 설계한 뒤, 성장의 한계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면서 수십년째 복지개혁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다. 후발 복지국가인 한국은 유럽의 그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는 사적 보험도 발달해 있다. 공적 보험을 전적으로 믿어 온 유럽인과는 다른 보장환경에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국가복지를 축소하고 사적 보험으로 보충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이미 추구하고 앞으로도 유지해야 할 건전한 복지모델인 것이다.

고상두 < 연세대 교수·유럽정치학 stko@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