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이건희 회장 직함 3개 중 2개 물려받아…경영권 승계 첫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것은 현 이사장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와병 중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임기가 이달 30일 만료되는 만큼 이 부회장의 차기 이사장 선임은 불가피했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와 별도로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첫발을 뗐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이 삼성 그룹 내에서 가진 공식 직함 세 개(삼성전자 회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중 두 개를 이어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이건희 회장이 맡던 자리

삼성은 현재 4개의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복지재단, 호암재단이 그것이다. 이 중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그룹 총수’가 이사장을 맡았다. 두 재단 모두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설립했다.

삼성복지재단과 호암재단의 경우 사회 원로급 인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남다르다. 두 재단의 현 이사장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이다.

이를 감안하면 이 부회장의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선임은 이 부회장이 삼성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그룹 안팎에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공익재단 이사장직부터 이 부회장이 승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재용, 이건희 회장 직함 3개 중 2개 물려받아…경영권 승계 첫발
이 부회장이 삼성의 사회공헌 사업을 대부분 총괄하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호암미술관, 리움 등 삼성그룹 미술관 운영과 장학사업, 문화 예술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어린이집과 삼성서울병원 등을 운영한다. 국내 최고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을 담당하다 보니 유동자산만 1조원 안팎에 이른다. 이 부회장은 오는 31일부터 두 재단의 이사장 임기를 시작한다.

◆회장직은 언제쯤 승계할까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언제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팀 산하 조직)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 부장, 2001년 상무보,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 2010년 부사장, 2011년 사장으로 차근차근 승진하며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이어 2013년에 삼성전자 부회장에 올랐다. 삼성의 차기 리더로서 위상이 공고해졌다.

지난해 5월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뒤에는 삼성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흔들림 없이 조직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하반기 부진에 빠졌던 삼성전자 실적을 일부 회복시켰고 금융, 바이오, B2B(기업 간 거래) 등 미래 비즈니스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회장직 승계 시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올해 안에 회장직 승계 작업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 내에선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이 ‘회장 직함’ 없이도 이미 삼성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데다 부친인 이 회장이 입원한 상황에서 굳이 회장직 승계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현재 유럽 출장 중이다. 지난 12일 이탈리아 투자회사 엑소르 이사회 참석과 삼성전자 폴란드 가전공장 방문 등을 위해 유럽으로 출국했다. 이 부회장은 엑소르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폴란드 공장을 방문해서는 최근 어려움에 빠진 삼성전자의 유럽 가전사업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 피하기 위해 재단 이용하는 일 없을 것"

삼성그룹은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문화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선임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재단을 통해 삼성 계열사 주식을 매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재단 이사장 선임을 ‘절세 수단’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다.

공익재단은 개인이나 법인으로부터 회사 지분 5% 미만(성실공익법인은 10% 미만)을 인수하는 경우 면세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재단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 계열사 지분을 인수해 우호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 회장이 보유지분을 재단에 넘기면 상속·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현재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3.38%와 삼성생명 지분 20.76%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다면 투명한 절차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할 것이란 기존 방침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전자 지분 0.03%, 삼성생명 지분 4.68%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2.18%를 갖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력

-1991년 삼성전자 입사 (사원)
-1996년 기획팀 부장
-2001년 경영기획팀 경영전략담당 상무보
-2003년 경영기획팀 상무
-2007년 전무
-2010년 부사장
-2011년 최고운영책임자 사장(COO)
-2013년 부회장
-2015년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