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뚫고 뚫리는 싸움…세계는 총성없는 정보전쟁 중
중국 삼국시대(220~280년) 적벽전은 천하를 삼분한 대전(大戰)이었다. 삼국지의 백미로 꼽히는 적벽대전은 미인계, 연환계 등 정보전의 승리였다. 적의 정보를 알면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한다. 불리한 패를 가졌더라도 상대의 패를 읽는다면 백전백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21세기에도 정보전(IW·information warfare)은 현대전쟁의 중심에 있다. 정확한 위치 파악, 이동 첩보, 지도부의 차후 계획 등을 수집하는 정보 강국들은 상대국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 승리를 거머쥔다. 물리적 전쟁뿐 아니라 국가안보, 경제, 사이버전에서도 정보는 반드시 보유해야 할 ‘총알’이다. 자국 정보 보완과 타국 정보 수집을 위한 세계 각국의 총성 없는 정보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정보 ‘쥐락펴락’하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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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미국 정보기관은 국가정보국(DNI)을 필두로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국방정보국(DIA), 연방수사국(FBI) 등 총 16개 기관에 달한다. 이 가운데 8개 기관은 국방부에 속해 있을 만큼 안보와 직결된 곳에서 활동한다. 냉전 시대에는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가 CIA에 맞서는 정보력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현재 CIA는 전 세계에서 쌍벽을 이룰 상대가 없을 정도다. 우방국 통신망까지 감청하는 미국의 정보수집 역량은 ‘세계 경찰국’을 넘어 가히 ‘세계 감시국’이란 말도 나온다.

16개 정보기관은 개별 활동을 하는 듯 보이지만 수장을 맡고 있는 DNI를 통해 각 부서의 정보가 모아지고 긴밀한 협의가 이뤄진다. 특히 DNI 내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 보고를 올리는 별도의 부서가 있어 정보기관들의 움직임이 백악관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미 정보기관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CIA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이다. CIA는 9·11 테러 이후 10년간 그를 추적했다. 체포 당시 적외선 영상 장비로 은신처와 드나드는 모든 인물을 촬영했으며 정찰 위성을 이용해 주변 동조 세력 유무까지 확인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정보제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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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 21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정보제국으로 변신했다. 독자적 정보 라인 외에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국제정보협력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를 결성해 수집한 정보 및 정보원을 공유하는 등 정보수집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고 있다. 지역과 영역을 초월해 운영되는 영국의 정보기관은 크게 비밀정보부(SIS·MI6)와 보안부(SS·MI5), 국방정보본부(DIS) 등이다.

SIS는 1909년 육군성과 해군성 주도로 창설된 비밀첩보부였다. 이후 1914년 ‘군사정보 6과(MI6)’ 형태로 분리돼 본격적으로 해외 군사정보를 전담했다. 007 시리즈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가 속한 MI6는 이때의 명칭을 사용한 별칭이다. 영화에선 정보원들이 ‘살인면허’를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SIS는 2006년에 요원 2명을 방송에 출연시켜 관련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SIS 요원들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며 외무부 장관의 직속기관으로 운영되고 정치·외교 비밀공작을 주도한다.

만만디 중국, 정보전은 ‘콰이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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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세계에서 정보기관을 정권 강화에 독보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다. 중국 국가안전부(MSS) 등 정보기관은 군사·안보분야를 포함, 세계 각국의 첨단 기밀을 빼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들어선 뒤 정보 역량 극대화가 추진 중이다. 역대 정권 가운데 최고 강도의 부패척결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보기관 동원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는 한편 탈북자 단속을 통한 동북아 일대의 안정을 꾀하는 일도 정보기관의 몫이다. 중국의 대외 정보수집 활동과 관련해 마이클 필스베리 미 국방부 고문은 “중국 정보기관의 능력이 세계 최강인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보전은 무차별적인 인해전술이 특징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호주 등 주요 관심 지역에 요원 4만여명이 군사과학, 정보통신, 위성·우주항공, 산업·경제·통상 등 전방위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중국의 최첨단 무기 개발도 자국의 연구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방위산업 강국을 상대로 한 스파이 활동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정설이다. 미 언론은 중국이 스파이 활동으로 무기 개발 기간을 25년 단축했다고 보도했으며 스노든 전 미 국가안보국(NSA) 요원도 “중국이 F-35 전투기와 B-2 폭격기 등 50 테라바이트 분량의 특급 기밀 자료를 해킹했다”고 폭로했다.

이스라엘 국력의 원천 ‘모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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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간 디아스포라(타국생활), 세계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겪은 후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에게 국가안보는 곧 생존이다. 아랍국가들로 포위된 지정학적 불리함을 극복한 이스라엘의 저력에는 세계적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가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직속기관이다. 2차대전에서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시 생존자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시킬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1960년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이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해 전범재판장에 세우면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을 막기 위해 모사드가 미 의회와 이란 고위층으로부터 1급 기밀을 빼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모사드는 도청, 이중 스파이 암살, 파괴 공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익 사수의 전위대 역할을 한다. 아랍권 정보수집 능력은 미 중앙정보국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라엘의 주요 우방국인 미국 정보망에도 접근한다. 모사드의 미국 내 활동이 냉전시절 소련 다음으로 활발했다. 뿐만 아니라 미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FBI 고위인사들의 전화까지 도청하는 등 세계 최고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 첩보망도 꿰뚫고 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정희형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경희대 생체의공학 4) horse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