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유연과 경직 사이
노동유연성이란 어쩌면 간단한 얘기다. 기업이 직원을 쉽게 뽑을 수 있고, 또 언제든 내보낼 수 있을 때 ‘유연’하다고 말한다. 노동유연성이 높으면 기업이나,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은 구직자에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보호하기 어려워지니 싫어한다. 한 번 입사하면 어지간해선 해고할 수 없는 ‘경직’된 규칙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것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을 노·사·정 합의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그래서 난센스다.

일자리 만든 이케아, 효성ITX

노·사·정 합의가 불발에 그쳤다고 시장이 멈춰 있는 건 아니다. 노동유연성을 높이려는 시장 주체들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이케아는 최근 아르바이트 사원을 뽑으면서 시급을 1만원으로 높여 정규직과 비슷한 처우를 제시했다. 채용해서 일을 못하면 계약 만료 때 내보내면 되고, 잘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주면 된다. 구직자로서도 선택할 만한 차선이다. 사실 이런 글로벌 회사에서 잠시라도 경력을 쌓은 것이 나중에 더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콜센터 운영업체인 효성ITX도 유연근무의 새로운 사례를 보여줬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할 신입 상담사 94명 전체를 정규직 시간선택제 사원으로 뽑은 것이다. 이들은 오전이나 오후를 골라 하루 4시간30분만 근무하면 된다. 월급은 88만원밖에 안되지만 직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이런 제도가 없었으면 육아 문제 등으로 아예 취업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변의 구직자들을 보면 딱딱한 기존 노동시장 구조로는 답이 안 나온다. 40~50대 주부, 50~60대 은퇴자들을 길게는 10년 이상 자리를 보장해주면서 누가 받아주겠나. 이 사람들은 대기업 정규직은 꿈도 안 꾼다. 이런 현실엔 눈감고 ‘비정규직이다, 계약직이다, 질 낮은 일자리다’라고 폄하하는 건 정치적 선동이거나 기득권 방어전술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 문제도 노동유연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정부가 청년인턴제 등을 통해 억지로 공공기관 등에 할당하다간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청년들의 자존감만 상할 뿐이다. 사정이 되는 회사들이 비핵심적인 업무는 비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아르바이트든, 단순 영업·판매직이든 채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게 차라리 낫다. 기업이 ‘싸게’ 뽑아 쓰면서 인재를 찾거나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30대 기업 등이 채용을 잘 늘리지 않는 건 한 번 뽑으면 절대로 내보낼 수 없는 경직성 때문이다. “해고의 자유가 보장되면 일자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게리 베커 교수(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을 진영논리로 해석하는 한 일자리는 늘어날 수 없다.

기득권 지키는 노조 못할 일

노동시장은 다행히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이케아 같은 글로벌 기업이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밀어붙이거나, 정부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시간선택제를 장려한 덕분이지만 그래도 변화는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근로계약은 사실 구직자와 기업 간 내밀한 계약의 영역이다. 최저한도만 보장되면 노조는 물론이요 법도 건드릴 수 없다. 서로 형편에 맞게 맺는 이런 유연한 계약이 많아져야 한다. 아침에든, 밤에든, 낮에든, 또는 이틀에 한 번이든, 달빛근로자든, 주말근로자든, 스마트워커든 일자리를 얻어 출근하고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