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관예우는 어디에 존재하나
전관예우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맡기면 유죄가 무죄로 되고 질 사건도 이긴다고 믿는 사람조차 있는 듯하다. 유전무죄니 하는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단언하건대 법원에 그런 관행은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기소한 검사나 패소한 상대방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의 부존재 입증은 극히 어렵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도장을 빌려주고 도장 값을 받는다는 무분별한 얘기까지 들린다. 신뢰하는 동료 법관이 합의 후 작성해온 판결문도 다시 손을 보는 것이 체질화돼 있는 법관들이 누가 무슨 내용을 작성하는지도 모르면서 도장을 빌려준다는 일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작성한 판결문이라도 후배 판사들이 검토 없이 도장만 찍지는 않는다.

가정법원 출신 변호사들은 가사사건을,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등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이런 전문 변호사들이 전관예우 때문에 존재한다면 법원이 같은 변호사에 대해 형사사건에서는 우대하면서 민사사건에서는 냉대한다는 말인가?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사건이 몰리고 그 결과 수임료가 올라가는 것은 시장의 선택일 뿐이다. 즉 전관 출신이라고 재판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지는 않지만 수임 과정에서 의뢰인들로부터는 유리한 대우를 받는다.

일반인은 누가 유능한 변호사인지 알기 어렵다. 의사의 경우는 전문의 제도나 단계별 의료전달 체계가 있지만 변호사의 경우는 이런 제도도 없다. 그 결과 대형 법무법인이나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 의뢰가 몰린다. 전관 출신이라는 것은 매우 강력한 시장 신호이며 대형 법무법인이나 저명한 전문 변호사처럼 따로 차별화된 시장 신호를 갖추지 못한 변호사들은 매우 불리하다. 이런 쏠림 현상을 전관예우 신화가 더욱 가중시킨다.

전관예우 신화는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는 유리한 시장 왜곡이고 승소 가능성을 과장해서 사건을 수임했다가 패소한 변호사에게는 좋은 핑계가 된다. 이 허망한 신화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결국 법률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다. 변호사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만 제공된다면 이런 불합리한 시장 왜곡은 사라질 것이다.

한편 국가가 제공한 기회를 통해 개발된 능력과 경험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수긍할 만한 견해이나 전관예우와는 무관하다. 이 문제는 미국의 시니어 저지(senior judge)와 같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원로 법관들의 능력과 경험을 공익에 활용할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