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가 어제 향년 91세로 타계했다. 리 전 총리는 불과 35세에 자치령 싱가포르의 지도자로 취임한 이후 50여년 동안 국가를 지도해왔던 국부였다. 독립 당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400달러에 불과하던 말레이반도의 남쪽 끝 작은 어촌을 지난해 그 140배인 5만6113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그에게서 조언을 구할 만큼 탁월한 통찰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세계의 지도자였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싱가포르는 국가를 오로지 효율성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바라본 리콴유의 의지와 집념이 만든 작품이었다. 산업육성은 물론이고 교육 정치 외교 사회 등 모든 국가전략이 이런 원칙에서 운영됐다. 영어 공용화를 과감하게 시행하고 산업클러스터(집적단지)를 조성했다. 일찌감치 금융과 해운의 국제 허브화에도 나섰으며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개방 정책도 펴나갔다. 노동 유연성과 규제철폐, 낮은 세금정책 등 친기업 정책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인 것도 리콴유였다. 세계 2위의 경제자유도를 기반으로 2013년 해외직접투자(FDI) 유입 규모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 GDP 대비 FDI는 홍콩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다. 무엇보다 그는 부패방지와 실력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정부조직을 지속적으로 혁신해 왔다. 지금도 집권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의 강령 중 하나는 반부패다.

물론 리 전 총리를 향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국가주도형 민주주의나 관료형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체제는 그의 창안물이다. 민주주의는 유보됐고 권위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그의 지도력이 있었기에 다양한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고, 해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아시아의 ‘멜팅존’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싱가포르는 다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바이오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력과 기업을 끌어들이고 소득세를 인하하는 등 해외 부유층 유치 전략도 펴고 있다. 이미 아시아의 다른 용들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아시아의 경제 강국이요 개방국가다. 위대한 한 인간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