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크라우드펀딩 규제법인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를 기업가의 혁신에 의한 동태적 발전과정으로 파악했다. 슘페터는 이 혁신을 ‘신(新)결합’이라고 불렀다.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재화,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판로, 새로운 공급원, 새로운 조직 등이 그것이다. 슘페터는 신결합으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해 경제구조를 내부로부터 혁명화하는 산업상의 돌연변이, 즉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창조적 파괴를 담당하는 주체가 바로 기업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결합은 누군가로부터 파이낸싱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능할 수 없다. 슘페터는 은행의 신용창조에 주목했다. 은행가야말로 진짜 자본가이고, 신결합을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업 실패의 위험을 부담하는 건 기업가가 아니라 오히려 은행가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자본주의 발전은 이런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 발전과 그 궤를 같이했다.

‘新결합’을 위한 자본주의 금융

오늘날 은행은 그때의 은행과는 물론 다르다. 금융시장도 진화를 한다. 슘페터가 말한 은행의 역할이 지금은 벤처캐피털의 주된 몫이 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벤처캐피털도 그 역할을 100% 다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온라인 펀딩 사이트에서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크라우드펀딩의 등장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창업자금 조달 채널이 은행, 벤처캐피털 등에서 일반(엔젤)투자자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크라우드펀딩은 각종 페이로 불리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결제기술과 함께 ‘핀테크’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크라우드펀딩 법안(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종래의 ‘기부형’, ‘대출형’을 넘어 주식 발행 형태의 ‘투자형’을 허용하자는 게 법안의 취지다. 여기서 2013년 6월 발의된 법안이 왜 아직도 국회에서 맴돌고 있는지, 또 야당이 다른 법안 통과를 위해 이 법안을 흥정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건 제쳐두자.

‘사고 제로’여야 한다는 정치권

심각한 건 이 과정에서 크라우드펀딩 법안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이 흥정 수단으로 투자자 보호를 물고 늘어지면서 온통 규제로 가득찰 판이다. 업종 제한, 기업 제한, 연간투자액 제한, 주식매각 제한, 광고행위 제한, 중개업자 제한 등만 봐도 그렇다. 금융위원회의 스탠스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는 곧 감독권의 무한 팽창을 의미한다. 이리 되면 말이 크라우드펀딩이지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법이 되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기의 위험성도 있으니 당국으로서는 이를 고지하는 등 합당한 절차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가 엄연히 감수해야 할 위험도 있다. 그래서 대박이 나면 그건 투자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가 모든 투자 행위를 보호하겠다는 식이면 투자 실패 시 그 책임도 모두 정부로 돌아온다. 이게 정부가 바라는 크라우드펀딩인가. 투자자 보호가 유일한 목적이라면 아예 크라우드펀딩 같은 법안은 안 만드는 게 정답일 것이다. 지금처럼 해 봤자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그나마 무슨 조그만 사고라도 터지면 아예 금지하자고 나올 게 뻔하니까.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