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로또가 아닌 통상임금 소송
노동계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워 온 송사 두 건이 올 들어 1차 결론이 났다.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싸고 현대자동차 노조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제기한 소송이다. 고정적으로 받아온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수당이 늘어난다. 노조가 소송에서 이기면 근로자들은 3년치 수당을 소급 적용받는다. 회사로선 비용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다.

외형상 소송 1라운드 결과는 현대차는 회사 측, 현대중공업은 노조 측 승리로 보인다. 승소를 결정한 요인은 상여금이 고정적으로 지급됐느냐였다. 현대차는 ‘15일 미만 근로자는 상여금 지급에서 제외한다’는 상여금 시행세칙에 따라 상여금이 고정성을 결여하고 있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 판결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상여금은 별도 규정 없이 일한 날짜만큼 지급돼 고정성을 갖춘 것으로 법원은 해석했다.

실속 크지 않았던 訟事

현대차 노조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말 항소장을 제출하는 등 법적 절차를 계속 진행 중이다. 상여금에 대한 고정성 기준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제시한 주요 기준이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1심 판결에도 그대로 적용돼 현대차 2심 판결에서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라운드에서 이겼지만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소송은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것이 골자였다. 승소하면 3년치 소급해서 받는 수당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법원 판결은 이런 기대와 거리감이 있다. 법원은 현대중공업에 대해 “종래의 방법에 의해 계산된 금액이 근로기준법에 따른 최저금액에 모자랄 때 미달한 범위 내에서만 종래 계산이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설명했다. 상여금을 제외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각종 수당이 근로기준법 최저 기준에 모자라야만 무효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노조 조직력이 강한 기업의 경우 향후 유사 소송에서 근로자들의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난국 극복에 노사 지혜 모아야

송사는 관련 당사자들에게 경제적·감정적 지출을 요구한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통상임금 판결과는 별도로 급여 전반을 따져보기로 합의하고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올 3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런 와중에 통상임금 항소심이 진행되면 노사 간 합의 정신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조선업황 침체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2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경영상 중대한 위기’에는 신의칙을 적용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기준을 제시했지만 1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회사에 선박 건조를 맡길 발주처가 많을 리 없다. ‘로또가 아니었던 소송’에서 비롯된 경제적·감정적 지출은 고스란히 실적 악화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사가 힘을 합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 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