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회장
윤석금 회장
웅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날은 2012년 9월26일이었다. 회사도 사상 최대 위기였지만 직원들도 어려움에 빠졌다. 그날 오전 법인카드 사용이 중지됐다. 개인 이름으로 된 법인카드 사용액에 대한 회사 입금이 중단된 것이다. 다음달 10월25일 결제일이 다가오자 팀장과 임원 몇 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후배들이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음날 어떤 사람은 현금을 내고, 현금이 없는 사람은 대출을 받아 후배 직원들이 업무를 위해 쓴 법인카드 대금을 갚았다.

◆안 떠나고 회사 지킨 직원들

1년 만에 법정관리 졸업한 비결이 뭡니까?…웅진서 한 手 배우려는 법정관리 기업들
요즘 웅진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에 다른 회사 사람들이 가끔 나타난다. S사, D사 등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 직원들이다.

이들이 웅진홀딩스를 찾는 이유는 ‘초단기간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비결’을 묻기 위해서다. 웅진은 2012년 10월11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년4개월 만인 2014년 2월11일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오늘이 법정관리를 졸업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퇴직금이나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웅진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직원들이 동료와 회사를 먼저 생각한 것 같습니다.” ‘웅진을 찾아온 다른 회사 직원들이 뭐라고 묻느냐’는 질문에 웅진 관계자는 이같이 답했다.

이 관계자는 상사와 선배 직원들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후배 직원이 회사일로 쓴 법인카드 결제를 해준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웅진홀딩스의 주요 사업인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이직률이 15%대에 그쳤다는 것도 웅진 직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얘깃거리다. 소프트웨어업계 전체의 평균 이직률(16.9%)보다도 낮았다는 것이다.

◆오너의 희생이 큰 역할

웅진그룹 대주주인 윤석금 회장의 결단과 자기 희생도 큰 역할을 했다. 윤 회장은 당시 “알짜 회사를 먼저 매각해 현금 변제율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웅진그룹은 계열사 가운데 영업을 가장 잘하고 있던 웅진코웨이와 웅진케미칼, 웅진식품을 차례로 매각해 빚 상환자금을 마련했다.

윤 회장은 또 자신이 갖고 있던 렉스필드CC 지분 43.2%와 두 아들이 갖고 있던 웅진케미칼과 웅진식품 주식을 출연해 회사 회생을 위해 쓰도록 했다. 웅진 관계자는 “윤 회장의 도덕성을 직원들이 믿은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2013년 8월 검찰은 웅진그룹의 기업어음(CP)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CP 발행은 차환을 위한 것이었고, 계열사인 서울저축은행 지원은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사익을 추구한 범죄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 회장이 법을 위반했지만 개인적으로 이익을 챙긴 것이 아니라 회사를 살리기 위한 행위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실한 채권 변제

채권자들을 존중하고 빚을 갚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정성’도 법정관리 조기 졸업에 큰 힘이 됐다. 법정관리 신청 당시 웅진홀딩스 대표였던 신광수 웅진에너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10분 넘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채권자와 주주,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자 상당수는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제대로 상환받지 못한다. 하지만 웅진은 성의를 다해 돈을 갚았다. 담보채권 5455억원은 전액 현금으로 갚았다. 무담보채권(9654억원) 중 71%는 현금으로 갚았고 나머지 29%는 주식으로 상환(출자전환)했다. 신 대표는 “주가가 7000원 선에 가면 출자전환한 채무도 100% 상환하는 셈인데 현재 주가는 그에 한참 못 미친다”며 “모든 계열사가 힘을 합치면 전액 상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업계 전문가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무담보 채권자들은 거의 돈을 떼이게 되거나 20~30%를 건지면 잘 건졌다고 본다”며 “무담보 채권자들의 현금 변제율 71%는 대단히 높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