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신용사회]  "개인회생 수임료도 빌려드려요"
서울의 대형 A저축은행은 지난해 10월 ‘귀사의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했으니 채권금액 등을 알려달라’는 자료송부 청구서를 받았다. 개인회생 관련 자료 요청이어서 으레 변호사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청구한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요청한 곳은 대부업체 B사였다. 알아보니 법무사와 연결된 B사가 채무자의 수임료를 대출해 주기 위해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엔 대출 브로커와 대부업체까지 변호사나 법무사와 손잡고 개인회생 시장에 가세했다. 이들은 변호사나 법무사 수임료가 없어 애타는 채무자에게 접근해 수임료까지 빌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개인회생을 신청하라고 유혹한다. 대출 브로커들은 불법적으로 모은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할 만큼 사정이 좋지 않은 채무자에게 접근해 개인회생을 권유한다.

100만원 안팎인 수임료가 없는 사람에겐 대부업체와 연계해 수임료를 대출해 준다. 개인회생만 인가받으면 대출받은 수임료를 천천히 갚아 나가면 된다고 설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대출이 이뤄지면 브로커는 대부업자에게서 중개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실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수임료 대출’이라고 검색하면 수십 개의 대부업체가 나온다.

수임료를 내기 위해 대출받은 돈도 엄밀히 말해 탕감될 수 있는 빚이다. 그러나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 법무사 등은 대출 브로커, 대부업자와 사전에 짜고 개인회생 채권목록에서 이를 빠뜨린다. 전액 현금으로 돌려받기 위해서다.

수임료 대출을 모두 갚을 때까지 일부러 개인회생 절차를 지연시키기도 한다. 단순한 보정 사항도 오류를 반복해 의도적으로 절차를 늦춰 돈을 빨리 갚게 하는 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렇게 개인회생제도를 악용해 돈벌이를 한 변호사, 법무사 19명을 지난달 적발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