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전한 숨은 규제, 경제 숨통 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규제개혁이다.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할 만큼 개혁의지가 강하다. 중앙부처 등록 규제 수가 1만4931건으로 여전히 많고, 현행 규제 가운데는 허가·금지, 경쟁제한 등 강도가 높고 질이 낮은 규제가 많은 것이 문제다.

정부는 전체 규제의 약 20%를 2016년까지 털어내고 규제비용총량제로 늘어나는 규제를 잡겠다고 밝혔다. 규제개혁은 양적인 관리도 중요하긴 하지만 불량규제나 숨은 규제를 없애는 것과 같은 질적인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숨은 규제는 규제의 사각지대가 있는 곳에서 자라난다. 정부 규제개혁은 행정규제기본법 상 등록된 행정규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미등록 규제나 행정지도와 같은 사실상의 규제는 개혁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사실상 규제인 행정지도, 권고·지침, 협조요청·구두지시 등은 규제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예컨대 물가지수와 관련된 제품가격을 민간 기업이 인상하려 할 때 정부가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 같은 구두요청은 엄연히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훼손하는 가격규제에 해당한다.

또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등록 규제 총수는 2013년 말 기준 5만2541건이다. 지자체 규제 중에는 등록 규제 외에 미등록 규제나 행태규제와 같은 숨은 규제도 많다. 미등록 규제는 법령 등에 근거해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규제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과 기업의 행위를 구속하고 자원배분에 영향을 주는 사실상 규제다. 늑장행정, 인허가처리 지연, 불필요한 서류 과다요구, 소극적 법령해석, 재량권 남용과 같이 피규제자의 입장에서 사실상의 규제로 인식되는 행태규제도 문제다. 공무원의 소극적인 업무태도로 애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응답이 26.1%로 나타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결과는 행태규제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규제개혁의 목표는 단지 기업의 비용부담을 낮춰주는 것이 아니다. 규제개혁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더 큰 목표다. 기업생태계 전반에 퍼져 있는 숨은 규제와 보이지 않는 지자체 규제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숨은 규제, 보이지 않는 규제가 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다는 기업가들의 호소는 규제완화 작업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숨은 규제 중에서 행정지도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행정지도는 법적 근거 없이 행할 수 있는 비법률적인 사실행위다. 법률에 근거해 행해야 하는 행정규제와는 달리 법적인 근거 없이 이뤄지는 행위이다 보니 행정 재량권 남용이 발생할 소지가 크고 또 때로는 법보다 더 엄격한 권고·지침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실상 규제다.

행정지도는 행정절차법의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해야 함은 물론 행정지도의 취지·내용·신분 등 내역을 사전에 상세히 서면으로 작성하게 하는 등 ‘행정지도 실명제’ 도입이 필요하다.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행정지도를 제한하고 위법·부당한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규제개혁은 공무원의 전문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이 규제개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공무원의 규제관련 행태 개선을 위해 적발·처벌 위주의 감사방식을 개선하고 면책제도를 활성화하는 한편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규제개혁에 적극 동참하고 실적을 내는 공무원에게 승진 등 인사상 차별적인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bk@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