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지하경제 양성화한다던 약속 어디로 갔나
애초 기대를 걸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재원을 마련한다며 ‘지하경제 양성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을 때 말이다. 세금을 더 걷지 않고도 복지재원 조달이 가능할 것처럼 떠들었던 게 지난 대선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정부가 집권 첫해 서두른 일은 그래서 고통 없이 거위 털을 뽑기로 한 세제개편이었다. 당시 경제수석의 표현이다. 그리고는 1년여다. 털을 조금만 뽑았더라면 거위들도 까맣게 잊고 지나갔을 것이다. 급한 김에 뭉텅이로 뽑은 게 실수다. 아프지 않을 리 없다. ‘연말정산 대란’이다.

공약은 당당했다.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해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투입한다는 호언이었다. 세출을 절감해 60%, 세입을 늘려 40%다. 세입에서 가장 큰 부분이 지하경제 양성화였다. 5년간 27조원이다. 하지만 이 공약은 지금 간 곳이 없다. 물론 집권 첫해 지하경제를 파고들긴 들었다. 대규모 세무조사다. 그러나 결과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3조2000억원, 목표치보다 5000억원을 더 거뒀을 뿐이다. 그 대신 세무조사가 경기 하강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하경제 양성화 캐치프레이즈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지하경제는 서둘러 정리해야 할 고황(膏)이다.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부정적 이미지의 멕시코 이탈리아 그리스 다음이라면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지하경제라면 조폭이나 밀수, 마약, 도박 같은 것을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일부다. 자기 소득을 100% 다 신고하지 않았다면 그게 바로 지하경제다. 따져보자. 주변에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의 탈루가 심하다. 현금으로 거래하고 소득은 줄여 신고한다. 음식점이나 학원, 심지어 변호사 의사 회계사들 가운데도 소득이 100만원도 안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금을 다 내고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며 골프와 해외여행을 즐기는 자칭 영세사업자들이다. 결국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4명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지하경제 규모가 350조원이다. 이 가운데 20% 정도만 양성화해서 10% 세율로 과세해보자. 7조원이다. OECD 평균 수준으로 지하경제 규모를 줄인다면 30조원이다. 복지재원을 걱정할 일이 없다.

그러나 공약은 구호에 그쳤다. 방법이 틀려서다. 세무조사와 같은 단순 세무행정에 의존한 탓이다. 정공법이 필요하다. 지하경제도 체계적으로 양성화해야 한다.

먼저 지하경제 규모부터 제대로 파악하자. 한 번도 조사해본 적이 없다. 과학적 조사 자료가 있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게다가 과정 자체가 국민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제는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OECD 권고대로 간접세 비중을 높이고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더 급한 일이 있다. 부가가치세의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것이다. 간이과세 대상자는 2013년 기준으로 178만명이다. 월 매출이 400만원도 안된다면 이익률을 10%로 따질 때 월 소득이 40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전체 사업자의 30% 이상이 이 지경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신고율이나 표준율에 의한 과세는 이제 포기해야 한다. 기장에 의한 신고가 기본이 돼야 한다.

세무조사도 없애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도 좋다. 문제는 세무공무원에게 과도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대상 선정부터 모호하고 절차나 추징도 모두 고무줄 잣대다. 공무원 재량이 아닌 법규에 근거해 투명하게 실시돼야 한다. 그래야 납세자들이 승복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법에 대한 신뢰다. 그런 면에서 현실은 암담하다. 국제기구가 발표한 한국 정치인과 공무원의 부패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정치인을 믿지 못하니 법을 신뢰할 리 없다. 법을 멋대로 집행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는 더욱 그렇다. 세금이 줄줄 새는데 누가 세금을 내려 하겠는가. 성실한 납세자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회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고? 유리지갑만 죽어날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