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상식으로 풀어야 할 수도권 규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를 해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올 들어 가장 반가운 뉴스라고 하겠다. 33년간 수도권을 옥죄던 규제가 드디어 해체되려는가. 대통령이 이를 ‘조금씩 해서는 안 되는 덩어리 규제’라 선언하고 “연내 풀겠다”는 각오까지 밝혀 더욱 기대를 가지게 한다.

1982년 국회의원들이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만들 때 이들의 주장은 ‘수도권 발전이 비수도권 투자를 빼앗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중앙의 기업투자를 물리적으로 억제하면 지방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어 지방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원들만 믿은 ‘폐쇄적 국가 논리’였다. 경기개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2003~2007년 경기 도내 기업 141개가 지방으로 이전한 사이 1만6738개가 해외로 이전했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가 특히 고약한 점은 이제 창업·증설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분출하려는 기업들의 앞길을 막는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수도권은 최고의 기업·인력·물자·인프라가 모이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미래 사업발전을 도모하는 기업들은 이런 조건을 최대로 활용할 것이며, 이들 중 수많은 기업들이 장래 한국의 정예(精銳)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의 입지조건을 외국 행(行)보다 더 기피되는 지방이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권 규제는 기존의 모든 규제 중 국가의 성장, 고용, 투자, 국제경쟁력 등에 가장 해악을 끼친 규제로 규정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아마 수많은 유망 기업들이 정체·도태되거나 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 중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을지 알 수 없다. 그간 수도권의 귀중한 땅은 허비되고, 인재와 자본은 고용의 기회를 잃고, 도시 경쟁력도 스스로 제한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패한(all-lose)’ 최악의 규제라 할 만하다.

상식적 판단 아래서는 이런 수도권 규제가 존재할 수 없다. 오늘날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상식적인 국가들은 모두 국토 균형개발이나 수도권 규제를 버렸다. 전 세계가 개방·정보화된 ‘글로벌 시대’에 기업, 인재, 자본은 국경을 넘어 어디로든지 흘러갈 수 있으므로 새로이 도래할 도시들의 경쟁시대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수도 런던 파리 도쿄는 글로벌 도시경쟁력 평가에서 매년 2·3·4위를 달리고 있다.

21세기 도시들은 그 사이즈와 집적도로 경쟁한다. 격년마다 ‘글로벌도시지수 순위(GCI)’를 발표하는 AT커니는 ‘세계 최대, 최고로 집적된 도시가 각 나라의 성장 엔진이 되고 그 지역으로 유입되는 자원의 관문이 된다’고 기술한다. 대규모 도시일수록 현대적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하고 그 원천인 지식, 기능, 기술을 배양할 능력이 커진다. 이는 오늘날 수도권성장이 양극화의 주범이므로 더 크지 못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한국적 균형발전 사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자해(自害)적인 관념인가를 말해 준다.

과거 우리 정치가들은 국토 균형발전론을 아무도 범치 못할 성역으로 만들었다. 이제까지 국토 균형발전론의 이름 아래 끼쳐진 가장 큰 해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재미 좀 보려고” 공약한 행정복합도시 건설이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인구 밀집국가에서 지방 발전을 꾀한다며 벌인 정부분할 소동, 그것이 자초한 정부 비효율과 국민 피해는 국가 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성전(聖戰)을 치르는 희생처럼 모두가 감춰 왔다. 정치인, 언론, 지식인들 누구도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위선적 작태가 이어졌으며 그 책임자들은 아무도 사과 한마디 한 바 없다. 진정한 수도권 규제 논의는 한국 정치가 이런 가식에서 깨어날 때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세종시로의 행정부 이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분이며 그의 규제 해제 언급은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를 바라는 입장에서 박 대통령의 수도권 규제 연내 해결 약속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