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화·진공관·원자로·아이패드 '기술혁신' 미국 이끈 건 소유와 자유, 그리고 경쟁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의 말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소유를 평등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기술, 관심, 근면함이 다르기 때문에 그 평등은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런 미덕마저 통제할 경우 사회는 가장 극단적인 곤궁에 처하게 된다. 소수의 가난과 구걸을 없애기는커녕 사회 전체가 가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흄과 루소의 상반된 주장

이 말에는 오늘날 미국이 강대국이 된 이유가 들어 있다. 바로 소유와 자유, 경쟁과 시장, 정부의 역할이다. 흄의 이 한마디는 플라톤(기원전 427~347)과 동시대 비관론자인 장자크 루소(1712~1778), 20세기 사회주의 유토피아론자들과 완전히 대비된다. 플라톤은 ‘모든 것을 공유하는’ 이상향을 주장했고,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소유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들의 후예인 유토피아론자들은 ‘완벽한 평등’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흄을 비교적 충실히 좇았던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은 번영을 누리고 있고, 유토피아론을 추종했던 소련과 중국 등의 전체주의 국가 체제는 가난만 남기고 망한 뒤 현실에 눈을 떠야 했다. 헤시오도스의 ‘황금시대’와 플라톤의 ‘이상향’은 “사적인 게 아무것도 없다면 공적인 것도 없다”는 장 보댕(1530~1596)과 “나는 존재한다. 고로 소유한다”는 존 로크(1632~1704)의 비꼼 속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소유가 없으면 자유는?

‘소유와 자유’의 저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국가의 번영을 좌우하는 이 같은 가치들이 영국에서 발생해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고 본다. 식민지 미국이 영국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도 소유와 자유, 경쟁과 시장, 독립정부 덕분이었다. 한때 영국이 소유와 자유의 나라였으나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화에 물들면서 미국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소유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는 나라가 됐다. 레닌이 이끌었던 소련은 그 반대 국가가 됐다.

미국의 소유권, 경제·정치적 자유, 경쟁과 시장, 작은 정부 추구(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정부)는 20세기 들면서 인류문명과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기술혁신을 불러왔다. “자유는 소유의 사용에서 나온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살짝 바꿔 “문명은 소유와 자유를 사용한 기술혁신에서 나온다”고 할 만하다. 인류가 오랫동안 ‘맬서스 함정(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산업혁명기를 통해 대도약한 것도 소유의 보증 덕분이었다는 것을 보면 소유가 자유와 시장경쟁, 번영의 기초임을 알 수 있다. 경제사학자인 더글러스 노스(1920~)는 사적 소유를 확실히 보장한 사회가 경제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그는 영국에서 특허권이 도입돼(지식재산권 보호) 발명가들을 자극한 것이 산업혁명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기술혁신 물결

노스의 말이 단순한 주장만이 아니라는 것은 미국이 인류에 내놓은 기술혁신의 종류로 설명된다. 미국 월스트리저널은 한 특집기사를 통해 ‘미국 혁신의 물결’을 설명했다. 연도별 발명품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거의 일치한다. 187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연평균 GDP 증가율은 2.1%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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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발명품을 보자. 1876년 전화기를 발명했다. 벨의 전화다. 이로 인해 정보 전달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말을 달려 소식을 전하는 것과 전화통화는 비교 불가능이다. 1879년 백열전구를 내놨다. “태양이 밤에도 떴다”며 신기해 했다는 조선시대 지식인이 있었다고 한다. 인류가 밤 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1899년 두통을 더는 아스피린이, 1903년 비행기, 1907년 진공관, 1908년 포드자동차의 모델T, 1927년 TV 등이 나왔다. 페니실린, 컴퓨터, 원자로, 전자레인지, 트랜지스터, 로봇, 레이저, X선 촬영기, 이메일, 자기공명영상(MRI), 인터넷, 아이패드 등 인류의 산업 자체를 바꾼 기술혁신은 거의 모두가 미국발(發)이었다.

기술은 삶을 단순히 편안하게 하는 데만 기여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늘 위기를 돌파한다. 한 산업이 정체하면 그 다음의 인간 정신이 발현된다. 석기→청동기→철기→석탄→석유→원자력→셰일가스처럼 인간의 기술은 혁신을 불러오는 정신을 자극한다.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이 가장 잘 발현되는 곳이 미국이라고 하면 틀림이 없다.

기술과 문명의 共進化

기술혁신은 노예를 해방시켰고, 여성 해방을 불러왔다. 기술을 개발하는 경쟁과 시장 구조에선 흑인 백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의 차별이 필요없다. 소비자는 그런 것을 가리지 않는다.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제품과 서비스는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시장이다. 개방 시장으로서 가장 큰 곳이 미국이다. 기술은 가사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 세탁기와 전자레인지는 전형적인 기술 제품이다. 세탁기를 눌러 놓고 여성들은 일하러 갈 수 있게 됐다. 엄마 없이도 아이들은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워 먹을 수 있다. 기술혁신은 곧 문명진화인 것이다.

■ 공산주의 몰락과정 명쾌히 설명…'소유와 자유'를 읽어봅시다
[Cover Story] 전화·진공관·원자로·아이패드 '기술혁신' 미국 이끈 건 소유와 자유, 그리고 경쟁

리처드 파이프스가 쓴 ‘소유와 자유’는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 ‘소유가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의 차이’에 대해 답을 준다. 저자는 러시아 역사, 특히 노동사 분야의 대학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러시아를 비중있게 다룬다. 물론 부정적인 관점에서다. 러시아는 왜 미국처럼 발전하지 못했을까. 아니 왜 영국처럼 유럽 문명의 중심에 서지 못했을까. 이것이 저자의 궁금증이었다. 저자는 소유와 자유라는 두 화두를 갖고 인류문명사를 찾아 나선다. 그리스와 로마부터 중세, 근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유와 자유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을 낸다.

소유가 존재했던 시기와 부재했던 시기가 어떻게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초점이었다. 영국과 러시아의 비교는 극적이다.

그의 결론은 소유제도의 존재 여부가 영국에선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러시아에선 전제정권의 통치로 갈랐다고 한다. 영국에선 사적 소유, 사적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왕권이 약화되고 민주주의가 개화했다. 반면 러시아는 취득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전제군주들이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러시아의 전신 소련은 단 몇 주 만에 전쟁도 없이 붕괴했다.

그는 소유가 자유를 증대한다는 가설을 토대로 글을 썼다. 이 책은 사적 소유를 인간사회의 필수요소로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주장대로.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