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리는 신약 연구 대신
의료서비스 분야에 정책 무게
'2020년 7대 제약강국 진입' 선언 3년 지났지만…신약개발 예산 · 제약육성 펀드 되레 줄었다

‘2017년 세계 10위권에 들어가고 2020년까지 7대 제약 강국에 진입하겠다.’

정부가 2012년 ‘글로벌 7대 제약산업 강국’을 목표로 내놓은 제약산업 육성정책인 ‘파마 2020’이 구호만 앞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책 시행 3년여 만에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신약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들고, 제약산업육성 펀드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 업계에서는 “정부가 성과를 내는 데 10여년이 걸리는 신약개발 투자보다는 당장 생색을 낼 수 있는 의료서비스 분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바꾸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줄어드는 정부 예산지원

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는 ‘2020년까지 글로벌 신약 10개’를 목표로 2011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을 출범했다. 이들 3개 부처와 민간 기업이 5300억원씩을 투자, 2020년까지 1조600억원 규모 펀드를 만들어 신약개발에 집중 투자한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4년간 투자액은 11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00억원을 범부처신약개발사업에 출자한 복지부의 올해 편성 예산은 89억원으로 더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당초 목표했던 규모의 4분의 1 수준인 2000억원대 펀드 조성에 그칠 전망이다. 2013년 2493억원이었던 정부 부처의 신약연구개발 예산도 지난해 2380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신약개발 의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의료기기로 정책 중심 이동?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조성하고 있는 제약산업육성 펀드는 당초 의도한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9월 1000억원 규모의 1호 펀드에 이어 올해 2호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해외에 진출하는 병원’을 지원하는 펀드와 혼합해 운영하기로 했다. 2호 펀드는 헬스산업육성 펀드로 목적이 바뀌어 글로벌 진출 제약사뿐만 아니라 헬스기기, 병원 등 헬스케어 산업과 관련 있는 기업들이 투자 대상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보다는 의료기기와 의료서비스 수출기업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2년 처음 지정한 혁신형 제약기업도 당초 약속했던 세금 혜택 및 연구개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복지부가 지난달 내놓은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 보완조치’는 2013년 7월 내놓은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연구개발 임상 인프라 구축’ ‘글로벌 시장지원 개척’ 등 이미 나온 정책들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치고, 당장 도움이 되는 정책은 없다는 것이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2017년 세계 10위권 제약산업 육성, 2020년 7대 제약 강국’이라는 비전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구호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제약산업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14.5%였고, 2013년 수출 증가율은 1.6%로 떨어졌다.

복지부가 제시한 2017년 수출 11조원을 달성하려면 연평균 50% 이상 수출이 늘어나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막연한 계획을 제시해놓고 뒤늦게 알맹이도 없는 보완 조치를 내놓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마 2020’을 내놓은 복지부 내부에서도 제약산업 정책을 둘러싼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제약을 산업으로 보는 쪽과 약가 인하 등 규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병존해 힘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제약산업 육성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곳이 정부에 없다”며 “매출 10조원짜리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내겠다는 정책 의지와 제약 주권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인식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파마 2020

2020년까지 국내 제약산업을 세계 7대 강국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 정부는 현재 2조3000억원인 국내 제약산업 수출 규모를 2017년까지 11조원으로 확대하고 세계 50위권에 국내 제약회사 하나를 진입시키기로 했다. 이를 발판으로 2020년까지 세계 7대 제약 강국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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