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업인 가석방 문제에 전향적인 견해를 잇달아 밝히고 있다. 곧 여야 간 협의를 한다는 말도 들린다. 나라 경제가 침체 일로에 있고 오너가 있어야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솔직한 고백도 여러 번 나왔다.

경기 침체에 직면해 기업인들에게 가석방의 은전을 베풀어주자는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을 우리는 환영해야만 할 것인가.

원천적으로 기업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감옥에 들어가 엄동설한 냉기에 발을 구르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그들은 죄를 지었을 것이다. 업무상 배임(형법 356조)이라고 하는 중대 탈법 행위다. 돈이 왔다갔다 했으니 횡령죄도 더해졌다. 그들 중에는 가짜 장부를 만들어 투자자를 속인 자도 포함됐다. 그러나 준엄한 판결이기만 하면 법치주의적 조건들과 법앞의 평등이 지켜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범죄에 상응한 처벌’이라는 대원칙이 준수됐다고 할 것인가.

냉정히 들여다보면 정치인들이 제멋대로 특정인을 석방하고 사면하는 것이라면 이는 법치주의라 할 수 없다. 감옥살이가 정치인의 은전에 달린 것이라면 이 역시 법치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사면권이나 가석방 권한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정치인이 나서는가. 이것이야말로 한국 기업인 범죄와 처벌의 정치적 속성 및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반(反)법치주의적 과잉 처벌 말이다.

지금 감옥살이를 하고 있거나 최근까지 감옥살이를 했던 기업인들에게 적용된 주된 범죄는 업무상 배임이다. 그러나 돌아보라. 업무상 배임죄로 옥살이를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업무상 배임은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를 성립시킬 뿐이다. 독일과 일본 법에 업무상 배임죄가 있다고 하지만 주식법, 판례 등에 의해 경영 판단은 면책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65% 상속세는 '범죄 올가미' 法에 불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부터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계열사 모두에 성공적인 구조조정이었던 출자와 자산 매입 때문에 김 회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실형을 살았다. 그것도 검사들의 별건수사였다. 성공한 구조조정을 처벌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출자로 손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효성그룹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회계상 분식 때문에 긴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재판을 받고 있다. 물론 성공한 구조조정이었고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을 최소화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경영상의 선택을 처벌하고 있다. 이는 사법을 공법화하는 심각한 입법의 타락이다.

손해 본 사람이 없기는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비슷하다. 주된 혐의에 대해 이 회장은 이미 고법에서 일부 무죄를 받았다. 그의 여죄가 대법에서도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면 이 회장 개인과 기업이 입은 손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구속부터 하고 감옥부터 보내는 이 무자비한 국가권력의 침탈은 제어돼야 마땅하다. 흔히 미국 엔론의 회계 범죄와 중처벌을 반증사례로 들지만 당시 엔론은 경영자 개인의 성과보상을 부풀리기 위한 회계 조작이었다.

한국 기업가들을 감옥으로 끌고가는 또 하나의 악법은 세계에서도 가장 악랄한 징벌적 상속세다. 이건희 회장이 이 때문에 근 10년을 허송했고(무죄였다!), 대부분 경영자들도 이 악법에 걸려 희생자가 되고 있다. 한국은 경영권이 있는 대기업 주식을 상속하면 무려 65%의 상속세를 때린다. 이런 상속세를 물고나면 경영권은 상속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꼼수가 생겨나고 탈법 수단이 개발된다. 결국 감옥에 가거나 거액의 사회적 기부금을 바치고서야 정치권은 상속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약탈적 세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스웨덴 호주 등 많은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미국은 과세이연으로 사실상 비과세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법제는 기어이 모든 기업가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만다. 재벌만의 문제도 아니다. 작은 기업도 자칫하면 걸려든다. 거의 모든 기업가가 기업의 부도와 동시에 범죄자가 된다. 기업이 위기에 빠질 때 대부분 기업인은 사기죄와 탈세에 걸려든다. 마지막 단계에서의 필사적 자금조달은 거의 100% 사기죄다. STX도 그렇고 LIG도 다를 것이 없다. 지금 SK는 형제가 옥살이를 하고 있고 태광은 모자가 징역형 재판을 받고 있다. 가족 공범의 경우 한 명만 감옥살이를 시킨다는 전통적 온정조차 모두 사라진 거칠고 황량한 법 집행이다. 기업인 범죄는 재판부부터가 조심 또 조심이다. 혹여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라도 문제될 것을 극력 피하려는 심정 때문이다. 처벌은 범죄에 상응하는 것이라야 한다. 덫을 쳐두고 걸리기를 기다리는 그런 법률은 이미 법률도 아니다.

경제가 죽고 있기 때문에 기업인을 석방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도 보편적 법정에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인신구속을 조심하는, 그런 법 환경이어야 경제도 살아난다. 기업을 살려내도 감옥 가고 기업이 죽어도 당연히 감옥에 가는, 그런 법적 환경에서 과연 누가 기업을 할 것인가. 또 축적한 재산의 65%를 국가에서 빼앗아가는 나라에서 경제가 잘되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최근 정치권에서 기업인 처벌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일회성 은전이 아니라 관련 법제를 충분히 재정비해 더는 애꿎은 범죄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