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대통령 주변의 '게이트' 역사
대통령 측근을 둘러싼 ‘게이트’는 역대 정권의 단골 메뉴였다. 어느 정권도 자유롭지 못했다. 가족과 측근의 비리를 막겠다는 대통령들의 취임 초 약속은 매번 공약(空約)이 되기 일쑤였다. 대통령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 주변엔 늘 사람이 꼬였다. 어김없이 검은 돈이 오갔다. 여기서 각종 권력형 비리가 싹텄고 정권의 불행한 종말을 재촉했다.

문민 정부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씨가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한때 소통령으로까지 불렸던 그였다. 정권 말기에 한보그룹 특혜 대출과 관련한 비리인 ‘한보 게이트’가 터졌다. 결국 현철씨는 여기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다. 김영삼 정부는 곧바로 레임덕에 빠졌다.

측근 비리 되풀이된 정권들

국민의 정부에선 기업인인 최규선 씨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간에 돈이 오간 ‘최규선 게이트’가 터졌다. 김 대통령의 삼남인 홍걸씨가 구속됐다. 김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도 비리혐의로 사법처리됐다. 김대중 정부는 식물정권 신세가 됐다.

도덕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도 측근 비리의 전철을 밟았다. 측근들이 청와대의 실세그룹을 형성했다. 오른팔로 통했던 이광재 전 의원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건넨 ‘박연차 게이트’에 휘말려 낙마했다. 노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도 비리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영포회’라는 비선조직의 실체 여부가 논란거리였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둘러싼 잡음이 정권 내내 끊이지 않았다. 막강한 실세로 통했던 두 사람은 결국 비리혐의로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친인척을 엄격하게 관리해온 박근혜 정부도 ‘비선라인’ 논란을 비켜 가진 못하는 상황이다. 정윤회 씨의 국정운영 개입 의혹이 담긴 문건파동이 불거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정씨가 청와대 핵심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과 정기모임을 갖고 국정운영에 개입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현 정부서 녹을 먹은 전직 청와대 비서관에 이어 전직 장관까지 청와대를 겨냥하면서 불똥이 전방위로 튀는 양상이다.

차제에 청와대 분위기 쇄신해야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이 불거진 것 자체가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이 시스템보다는 이너서클(일부 측근그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준 것은 보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비밀주의 스타일’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청와대의 ‘3인방’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게 대통령이다. 외부와는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는 과거 한 대통령의 푸념에 측근들이 오죽했으면 ‘청와대 위문단’을 구성했을까. 대통령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지 않으면 시중의 생생한 여론을 접하기는 어렵다. 자칫 인의 장막에 갇힐 수 있다는 게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얘기다. 차제에 청와대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이재창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