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높던 미국 유통업체, 이젠 직구族 모시기

원화 표시하고 통역사 배치
英 화장품 업체 '러시', 韓 '진상고객' 탓 배송료 올려
[막오른 美 블랙 프라이데이] 韓카드 안받던 백화점몰, 한국어 안내문 띄워

‘한국에서 손쉽게 쇼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격이 원화입니다. 국제 배송료가 저렴합니다.…’

미국의 유명 백화점인 메이시스, 블루밍데일스, 로드앤드테일러, 삭스피프스애비뉴, 니만마커스몰 등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홈페이지에 한국어로 된 쇼핑 안내문(사진)을 일제히 띄워놓고 있다. 상품 가격을 원화로 환산해 보여주고 관세, 배송비 등을 더한 실제 구매액도 알려준다. 한국 직구족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신용카드는 아예 받지도 않아 ‘직구하기 힘든 곳’으로 꼽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 직구 수요가 워낙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콧대 높던 미국 백화점도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직구족은 이처럼 해외 유통업체들의 판촉 방법을 바꿔놓을 정도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 의류업체 갭과 아동용품업체 짐보리는 2012년 블랙 프라이데이 때 한국 서버 접속을 차단했다가 국내 네티즌의 거센 항의에 역풍을 맞았다. 이후 갭 온라인 쇼핑몰은 콜센터에 한국어 통역사를 배치하는 등 한국 직구족에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유독 한국 가격에 거품이 심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폴로랄프로렌은 직구 열풍으로 한국법인 매출이 뚝뚝 떨어지자 국내 아동복 가격을 최대 40% 낮추기도 했다.

한국 직구족이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위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물론 유럽의 중소형 온라인몰까지 한국어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명품시계 직구로 유명한 애쉬포드는 올 9월 한글 사이트를 구축하고, 249달러어치 이상 사면 한국으로 무료 배송해 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영국 의류업체 아소스 등은 네이버에 홍보 카페까지 개설해 한국 손님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몇몇 극성 소비자들이 ‘진상 고객’에 가까운 행태를 보여 한국 직구족이 해외 업체들의 ‘경계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화장품업체 러시는 이달 초 한국 배송료를 대폭 인상했다. 러시는 위치 추적이 안 되는 국영 우체국(로열메일)을 통해 상품을 배송해 왔는데, 일부 국내 소비자들이 이를 악용해 “제품을 못 받았다”고 억지를 부려 같은 상품을 두 번 배송받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사는 한국에서 주문한 상품은 위치 추적이 되는 특송 서비스인 UPS를 통해서만 배송하도록 했다. 이 탓에 배송비가 두 배로 뛰면서 한국 매장에서 사는 것과 가격 차이가 없어졌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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