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도약 - 5만달러 시대 열자
왜 기업가 정신인가 (4부) 野性·승부 근성을 되살리자

혁신의 길은 어디에나 있다 (5) 양진호 (주)못된고양이 대표
‘혁신(innovation)’은 정보기술(IT) 회사나 벤처기업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통산업, 사양산업에서도 남들과 다른 접근법으로 혁신을 이룬 기업이 많다. 작년 미국 경제전문지 패스트컴퍼니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기업’ 1위는 나이키였다.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로 인식됐던 나이키는 과감히 스포츠용품에 IT를 결합했다. 신체활동 측정 팔찌 ‘퓨얼밴드’는 나이키 혁신의 상징이다.

스웨덴 이케아(IKEA)도 혁신을 통해 ‘가구’라는 전통산업의 틀을 바꿨다. 아주 고급스럽거나, 싸구려 가구만 존재하는 시장에 중간 가격의 가구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개별 점포 대신 ‘가구 슈퍼마켓’ 형태의 매장을 만들어 유통방식도 확 바꿨다. 그 결과 1943년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 시작한 이케아는 연 매출 40조원을 올리는 세계 최대 가구회사가 됐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나이키와 이케아가 한국의 전통·사양산업에 주는 시사점이다.
양진호 ㈜못된고양이 대표는 좌판·노점 전용 아이템이던 중저가 액세서리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워냈다. 서울 남대문 본사에 모인 양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양진호 ㈜못된고양이 대표는 좌판·노점 전용 아이템이던 중저가 액세서리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키워냈다. 서울 남대문 본사에 모인 양 대표(가운데)와 직원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1991년 어느 날, 서울 남가좌동 모래내시장 골목에서 스무 살 청년이 좌판을 깔고 액세서리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수완이 좋아 1년 만에 2000만원가량을 벌었다. 이 돈으로 손수레를 사서 노점을 열었다. 한푼 두푼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에 8개월 만에 벌어놓은 돈을 모두 날렸다. 이후 막노동, 보따리상 등 밑바닥을 전전했다. 그로부터 23년 뒤, 청년은 국내 최대 액세서리 프랜차이즈 기업 사장이 됐다.

양진호 (주)못된고양이 대표(44) 얘기다. 못된고양이는 중저가 액세서리(패션 주얼리)를 체인점을 통해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좌판, 영세매장용 아이템으로만 여겨지던 중저가 액세서리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하고 기업화를 꾀한 것이다. 양 대표는 “액세서리 사업이라고 해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없다”며 “전 세계 70억 인구가 우리의 미래 고객”이라고 말했다.

노점상에서 명동상권 ‘스타’로

[창간 50주년] 좌판서 팔던 액세서리를 브랜드化…"70억 인구가 고객"

어릴 적 양 대표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부모님, 형제자매 등 10명이 단칸방에서 함께 살았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그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조그만 좌판을 벌였다. 1991년 군 제대 직후 단돈 34만원을 들고 모래내 시장에서 좌판을 시작한 것도 이런 경험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고 했다. 장사에 천부적 소질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섣불리 ‘판’을 키웠다가 문제가 생겼다. 2년여 좌판과 노점 장사로 수천만원을 번 그는 신발 노점 세 개를 냈지만 8개월 만에 모은 돈을 모두 날렸다. 먹고살 방도가 없자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다. 좌절감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극단적 생각도 했다.

1998년 그는 다시 장사꾼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역시 장사”란 생각에서였다. 의류회사에서 ‘땡처리’ 옷을 가져다 전국을 돌며 파는 ‘월급쟁이 보따리상’을 했다. 그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그해 종로에 액세서리 점포를 월세로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돈을 벌었다. 2004년 액세서리 점포가 즐비한 명동에 진출해 주변 상권을 휩쓸었다.

액세서리 장사를 기업으로 만들다

[창간 50주년] 좌판서 팔던 액세서리를 브랜드化…"70억 인구가 고객"

한창 장사에 재미를 붙이던 그는 프랜차이즈 창업을 결심했다. “가능할까”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장사꾼 소질’을 믿었다.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1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액세서리 프랜차이즈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가공업체들이 워낙 영세해 거래를 해도 명세표를 끊어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세원이 노출된다는 이유에서다. 열 번 이상 찾아가 설득했다. 끝내 거부하는 곳과는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또 정품을 고집하는 과정에서 ‘짝퉁’보다 제품값을 더 받다 보니 가맹점 점주들과 갈등을 겪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체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공업체를 찾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못된고양이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매장마다 고객이 몰렸다. 첫해 15개였던 프랜차이즈 매장은 3년 뒤인 2011년 65개로 늘었다. 지금은 국내에만 110개 매장이 있다. 회사 매출(본사 기준)도 2011년 200억원에서 작년 340억원으로 늘었다. 양 대표는 올해 매출은 400억원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20년 뒤 전 세계에 수천개 매장 낼 것”

양 대표는 3년 전부터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못된고양이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 영어 브랜드 이름 ‘N.CAT’도 만들었다. 2012년 대만 타이베이, 가오슝 등에 7개 매장을 열었다. 지난달엔 캄보디아 프놈펜, 필리핀 마닐라에 프랜차이즈 매장을 냈고, 다음달에는 필리핀 알라방과 미국 하와이에도 진출한다. 내년 봄에는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에도 매장을 열 계획이다.

양 대표는 “국내가 아닌 70억명 인구가 있는 전 세계가 우리의 사업 무대”라며 “10~20년 뒤에는 전 세계에 수천 개 ‘못된고양이’ 매장을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양진호 대표는

△1970년 서울 출생 △1991년 인덕대 기계설계학과 졸업 △1991년 액세서리 사업 시작 △2008년 못된고양이 설립 △2011년 프랜차이즈 사업 시작 △2013년 ‘100만불 수출의 탑’(대통령상) 수상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특별취재팀=이태명 팀장, 정인설(산업부) 전설리(IT과학부) 윤정현(증권부) 박신영(금융부) 전예진(정치부) 김주완(경제부) 임현우(생활경제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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