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정치의 탐욕, 공기업 人事
강원랜드 사장 공모에 23명이 몰려든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개혁 1순위 공기업 사령탑에 자신을 적임자로 생각하는 ‘장년 백수’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 용기를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개혁의지가 충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1차 전형을 통과한 10명 중에는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캠프에 몸담았던 정치인, 전 지상파 방송사 사장, 전 기초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이름도 눈에 띈다. 모두 강원 출신이다. 최고경영자(CEO)를 뽑을 때 유독 지역연고가 중요한 곳이 강원랜드다. 전임 사장도 강원지사 출마를 위해 지난 2월 일찌감치 사표를 냈다. 영·호남의 지역패당 정치가 울고 갈 정도다.

강원랜드의 낙하산 전쟁

2012년 강원랜드가 사업상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태백의 오투리조트에 150억원을 기부한 것은 상상하기 힘든 엽기적 결정이었다. 강원 출신이 주축인 이사회가 ‘폐광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도내 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방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린 것이었다. 이 일로 우리는 투자가 아닌데도 공기업이 수백억원 단위의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정부가 뒤늦게 나섰다. 감사원은 전직 이사들에 대한 손해보상 청구소송을 지시했고 강원랜드는 이를 실행했다.

태백시도 발끈하고 나섰다. 당시 이사회 결정은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내부적으로 전직 이사들을 위한 소송비용 모금을 시작한 것. 그러자 이번에는 지역 공무원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왜 정치적으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 공무원들이 경제적 부담을 지느냐는 것. 정말 엉망진창이다.

이제 시선은 불가피하게 임명권자인 청와대로 향한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관료들 사이에선 특정 인사 내정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세칭 ‘문고리 권력’을 붙들기 위해 막판 피치를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인천공항공사 사장 인사가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눈여겨본 터다. 강원랜드 인사 구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인가

그런데 정말 공기업 인사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가 국가 대개조를 들고나온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 바람에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명명된 관료집단의 공공부문 재취업이 차단되고 관련 인사도 계속 지연돼왔다. 그 틈새를 이른바 ‘정피아(정치인+마피아)’, 정치권 낙하산들이 속속 파고들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친박계 인사들은 “관리능력, 정무적인 감각을 두루 갖췄다면 괜찮지 않으냐”고 둘러대지만 국민들을 바보로 알고 하는 얘기다. 지금 공기업 요직들을 차지한 정치권 출신들 중에는 자신이 몇 달째 몸담고 있는 회사의 기본 정보도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기자 앞에서 매출 2000억원을 영업이익 2000억원으로 불러준 이도 있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공기업에 아무런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을 내려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2012년 12월25일)고 했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수십년간 켜켜이 쌓여 있는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를 없애겠다는 다짐을 이렇게 간단히 팽개쳐서는 안된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