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급격한 엔低, 또다른 외환위기 우려된다
엔저(엔화 약세) 공세로 한국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950원대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하락했다.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2012년 6월4일 1509원90전 대비 57%나 절상됐다. 달러 강세로 엔저는 가파르게 진행되는 반면 원저는 주춤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경제는 회복돼 양적 완화 축소 완료와 금리 인상이 전망되는 반면 일본과 유로존은 경제회복 부진으로 추가적인 양적 완화 통화정책이 예고되면서 달러화 강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2012년 6월4일의 달러당 78.17엔 대비 29%나 오른 달러당 109엔 선인 현재의 엔·달러 환율이 내년 중 130엔대까지 상승하는 슈퍼달러 시대가 재연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엔저 추세와 달리 원저 속도는 미미하다. 현재 1040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은 2012년 6월5일 달러당 1181원 대비 14% 하락했다. 달러 강세 속에서도 원화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순매수 지속으로 약세화가 제약을 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앞으로 일본, 유럽의 추가 양적 완화로 당분간 캐리 트레이드도 더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2년 이상 지속된 원·엔 환율 하락은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2002~2011년 연평균 15%를 유지하던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2012년 이후 평균 2%대로 추락했다. 그동안의 원화 고평가에 따른 역(逆)J커브 영향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 경상수지가 급락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거 비슷한 원·엔 환율 하락 이후 겪었던 1997년, 2008년의 위기가 재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두 위기는 모두 미국 금리인상기였다. 다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려 하고 있다. 2012년 6월 이후 57%나 절상된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내년에는 800원대까지 추가 절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책이 시급하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정되는 엔·달러 환율은 한국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 결국 서울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을 적어도 엔·달러 환율만큼은 올라가도록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선물환 한도 규제 △거시건전성부담금 △외국인 채권 과세 부활 등 3종세트로는 기축통화국의 무질서한 양적 완화에 따른 캐리 트레이드와 이에 편승한 핫머니 공격에 미흡하다는 것이 드러난 이상 추가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2011년 10월 파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기축통화국의 무질서한 양적 완화에 따른 신흥시장국 금융불안을 대처하는 방안으로 ‘자본이동관리원칙’을 합의했다. 이에 대해 2012년 국제통화기금(IMF)도 기관견해로 추인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기축통화국의 통화정책으로 신흥시장국들의 거시건전성이 위협받을 경우 거시건전성 차원의 자본이동규제를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질서 있는 외환시장 개입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적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핫머니를 포함한 무질서한 자본이동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 △질서 있는 외환시장 개입 △전향적인 금리·환율 정책조합 운용 △불황형 흑자 교정을 위한 투자 등 내수 진작 △내년 미국 금리인상 시 예상되는 외화유출 가능성에 대비한 충분한 외화유동성 확보 △서울외환시장 불안요인인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 대책 강구 △G20 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환율안정 중요성과 정책 당위성에 대해 이해를 촉구하는 국제금융외교 강화 △적합한 환율제도 모색 등 다시 외환위기가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다각적이고 전향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두 수장 간에 선문답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韓經硏 초빙연구위원 joh@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