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주력 모델(SE)을 2만2277달러에 내놨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캠리(LE) 출고가격은 2만2680달러. 쏘나타보다 403달러 비쌌다. 그러나 1년 만에 두 차의 가격은 역전됐다. 올해 쏘나타 주력모델 가격은 2만3175달러인 반면 캠리는 2만2870달러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할인 혜택으로 캠리 가격이 쏘나타보다 낮아진 적은 있었지만, 출고 가격이 역전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내년엔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 선으로 낮아진다는데, 일본 기업들의 가격인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엔低 2년'에 가격역전 현실로…美서 캠리보다 비싸진 쏘나타
국내 산업계에 ‘엔저 비상벨’이 또다시 울리고 있다. 작년 초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를 본격 추진하면서 시작된 엔저(엔화가치 하락) 현상이 올 들어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국내 기업들은 아우성이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들과의 가격경쟁력 격차가 커지고 있어서다.

○한계에 내몰린 국내 기업

엔화가치는 2년째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9.25엔을 기록해 2008년 8월29일 이후 6년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날 원·엔 환율도 100엔당 958원8전까지 떨어졌다. 두달 전인 7월8일 1008원5전보다 5% 급락한 것.

엔저 현상은 주요 수출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엔화가치가 하락하는 만큼 일본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낮출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가 한·일 기업의 유럽시장 수출단가(기계·전자·자동차)를 조사한 결과 2012년 9월 대비 올해 6월 단가는 한국이 일본보다 7.1% 높아졌다. 엔저에 따른 가격 격차라는 게 무역협회 분석이다.

국내 기업들이 받는 엔저 후폭풍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7월 8.8%에서 올해 8월 7.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도요타의 점유율은 14.7%에서 15.5%로 올랐다. 현대차 관계자는 “엔저에 힘입은 일본차들이 가격을 낮추고, 할인 혜택을 늘리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귀띔했다. 정보기술(IT)·전자 부품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자부품 제조사인 대기업 A사는 작년 상반기 대비 올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이 회사는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라는 부품을 만드는데 이비덴, 신코 등 일본 경쟁사들이 가격을 5% 이상 낮추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수출기업 ‘대위기’

문제는 엔저 현상이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재 100엔당 950원대인 원·엔 환율이 내년 8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모건스탠리, BNP파리바 등 글로벌 투자·상업은행 8곳이 최근 전망한 내년 3분기 원·엔 환율 평균치는 100엔당 887원이었다. 엔저 현상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갈 것이란 의미다.

산업계에선 “800원대의 원·엔 환율이 현실화하면 버틸 수 있는 국내 기업이 몇 안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달 초 주요 대기업 146개를 대상으로 원·엔 환율 전망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들은 올해 원·엔 평균환율(연간)을 1058원33전으로 예측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엔저 추세가 계속되면 연평균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13원대에 그쳐 손익분기점(1044원)을 크게 밑돌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800원대까지 떨어지면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100여개 수출 품목 대부분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명/최진석/김유미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