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 규제가 KB사태의 몸통이다
최근 야기된 KB금융 사태의 몸통은 금융 규제다. 겉으로 알려진 문제는 주전산기 교체에 따른 경영진의 갈등이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낙후된 금융 규제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횡령도 배임도 아닌데, 금융 당국이 중징계를 하고 이사회를 압박해 해임을 단행하는 ‘친절한 행정’이 바로 한국 금융의 아킬레스건(腱)이다.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1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말라위(79위)·우간다(81위)와 비슷한 후진국 수준이다. 은행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총자산이익률은 지난해 0.38%로 아시아 꼴찌 수준이다. 대출의 이용가능성 120위, 벤처자본의 이용가능성 107위 등 주요 금융 분야도 100위권 밖이다.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9개 외국계 금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금융의 경쟁력 현황 및 개선 과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67.5점이라는 낙제점을 줬으며, 64.2%가 한국 금융산업의 최대 문제점으로 ‘과도한 규제 및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꼽았다.

바로 금융 당국의 과도한 규제가 만병의 근원이다. 금융 상품은 물론 전산 시스템에서 보안 지침까지 상세한 내부 규정으로 ‘친절하게’ 지도한다. 금융회사는 그 지도만 충실히 따르면 대부분의 금융 사고로부터 면책이 된다. 공인인증서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율과 경쟁’이란 시장경제 원칙은 사라지고, ‘통제와 보호’라는 규제행정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대외 경쟁력만 유지되면 문제는 없다. 불편한 진실은 한국의 전 산업분야에서 가장 낙후된 산업이 금융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연봉 등 대우는 모든 산업분야에서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개방되지 않은 금융산업 구조다. 금융뿐 아니라 교육, 법률, 의료, 행정 등 개방되지 않은 분야의 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바닥권이다. 반도체, 조선, 휴대폰, 특허, 자동차 등 개방 분야의 경쟁력은 OECD 5위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규제에서 개방으로의 일대 전환이 KB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규제를 풀었을 때 발생할 위험성에 대한 지적이 나올 것이다. 규제 개혁의 패러다임은 사전 규제에서 사후 평가로 이전하는 소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의 전환에 있다. 사전 규제를 줄이고 경쟁과 평가를 통해 자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올리게 하라. 그러면 부진한 세계화, 기술금융의 강화, 신금융의 진출 등을 통해 금융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창조경제로 가는 길에 창조금융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창조경제 구현을 막는 규제들은 소관 부처가 금융위원회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음을 KB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공인인증서 관련 전자금융 규제는 아직 문제의 절반도 풀지 못하고 있다. 기술금융의 꽃인 크라우드 펀딩은 투자를 옥죄는 환매 규제와 총액 규제가 없어야 한다. 벤처의 동반자인 코스닥은 통합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식옵션은 여전히 과도한 규제로 벤처 인재 유치의 길을 막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핵심인 인수합병(M&A) 시장은 육성되지 않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금융결제 알리페이를 왜 한국 기업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가. 지나간 개발시대 성공에 기반한 규제 금융의 논리를 금융당국 스스로 개혁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유례없는 한국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KB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금융당국에 귀속돼야 할 것이다.

이민화 < KAIST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mhleesr@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