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현대重, 파업할 때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임금 인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23일부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등 파업수순을 밟고 있다. 19년 무분규 전통이 금세라도 깨질 것 같은 분위기다.

이상기류는 작년 10월 노조 위원장 선거 때부터 감지됐다. 강성 후보인 정병모 씨가 깜짝 당선된 데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누적된 탓이 컸다.

불만의 핵심은 울산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들과의 임금 격차다. 2004년 현대차(4900만원)보다 많던 현대중 근로자의 평균 연봉(5000만원)이 작년에는 7200만원으로, 현대차에 비해 2200만원가량 밑돌았다. 방치하면 증폭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강경 투쟁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파업을 해야만 (현대차 노조처럼)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똬리를 튼 것이다.

위기 때 파업 명분 없어

하지만 업황·수익성 및 글로벌 생산전략이 다른 기업 간 임금 비교는 의미가 없다. 조선업 호황 땐(2006~2010년) 현대중이 현대차보다 임금을 더 많이 올려줬고 성과격려금도 더 줬다.

영업이익률 추이도 다르다. 현대차는 2011년 10.32%를 기록한 이후 매년 9% 후반대를 유지해왔다. 현대중은 매출 정체 속에 영업이익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2010년 15.01%에 달하던 게 급기야 작년에는 1.48%로 급락했다. 올 상반기에만 연결기준 1조3000억원가량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조선 1위’ 명성이 무색해졌다. 최근 나온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의 등급 강등이 때늦었다는 지적도 들린다.

현대중은 신화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자가 도크도 없이 선박을 수주할 때부터 그랬다. 맨주먹으로 해외에 나가 보고 듣고 배우면서 키워온 회사다. 1983년부터 줄곧 세계 1위를 지켰다. 창립(1973년) 이후 단 한 번의 구조조정도 없었다. 한 해 정년퇴직자만 1200명씩 나오는 이유다.

30년 넘게 세계 1위를 지켜오다 보니 그늘도 없지 않았다. 안일한 사고가 독버섯처럼 파고들었다. 직원들의 비리가 잇달아 적발됐다. 태양광 투자 등 미래 수익창출을 위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사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도 들린다.

현대중 신화는 계속돼야

중국 경쟁사들의 맹추격 속에 조선업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파업 강행은 불가하다. 파업은 비용이다. 반드시 대가가 뒤따른다. 하루 1030억원의 매출과 160억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한다. 파업 회사에 누가 선뜻 발주하겠는가. 일감이 줄면 고용안정도 해칠 수 있다.

비판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권이 보여준 극한 혼란만으로도 국민들은 염증이 난다. 시장경제가 무르익을수록 노동운동은 퇴조하는 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옛 향수에 불을 지펴 강성투쟁을 해본들 얻을 게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측에 경각심을 줄 정도면 됐다. 권오갑 전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구원투수로 투입한 점만 봐도 사주가 현 상황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다. 실리 추구 노조라면 위기 때 임금인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후에 성과 공유를 요구해도 늦지 않는다. 사측도 경영 난맥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대중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