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표 명품업체 에르메스와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이 4년여에 걸친 ‘진흙탕 싸움’에 마침표를 찍었다. 두 회사는 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LVMH의 에르메스 지분 인수로 촉발된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LVMH의 에르메스 인수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7년 된 에르메스 가문의 5~6대손들이 똘똘 뭉쳐 LVMH의 ‘세계 1위 명품왕국’ 야망을 꺾고 가문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177년 '家門의 영광' 지킨 에르메스 후손들
○맞고소·벌금으로 얼룩진 4년

양측 합의안에 따르면 LVMH는 보유하고 있는 약 75억달러 상당의 에르메스 지분 23%를 자사 주주들에게 넘겨 분산시키기로 했다. LVMH 지주회사인 아르노그룹은 앞으로 5년간 에르메스 지분을 취득하지 않기로 했다. LVMH 쪽에는 베르나르 아르노 아르노그룹 회장이 보유한 에르메스 지분 8.5%만 남게 된다.

두 명품그룹의 갈등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VMH는 강력한 경쟁자로 성장한 에르메스를 인수하기 위해 비밀리에 에르메스 지분 4.9%를 매입했다. 에르메스 주식을 조금씩 사들이던 LVMH는 2010년 에르메스 지분 14.2%를 보유하고 있다고 깜짝 발표했고, 이후 지분을 17.1%로 늘렸다. 시장에는 LVMH의 에르메스 인수설이 파다했다. LVMH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에르메스는 이를 적대적 인수합병(M&A) 의도로 해석했다. 에르메스 역사상 첫 외부경영인이었던 패트릭 토마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LVMH를 “우리 정원에 난입한 침략자”로 묘사하며 주식 매입 중단을 촉구했다. LVMH는 그러나 에르메스 지분율을 23%까지 늘리며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후손들 뭉쳐 맹활약

에르메스 가문은 재빨리 지분 방어에 나섰다. 1837년 에르메스를 창업한 티에르 에르메스의 5~6대손인 가족 주주들은 당시 총 7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분이 200여명에게 쪼개져 있었다. 에르메스는 가문의 주주들을 규합해 지분 50.2%를 차지한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2012년 9월에는 LVMH가 에르메스 주식 매입을 위해 내부자 거래 등 불법행위를 동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LVMH는 에르메스를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지난해 7월 프랑스 시장규제위원회(AMF)는 LVMH에 에르메스 주식 매입 이전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사상 최대 금액인 800만유로(약 107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업계에선 에르메스가 올초 오너 경영체제로 복귀한 것이 LVMH가 의지를 꺾은 결정타가 됐다고 보고 있다. 에르메스는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8년 만인 지난 3월 창업주의 6대손 악셀 뒤마(43)를 CEO에 앉혔다. 뒤마 CEO는 1978년부터 2010년 작고할 때까지 CEO를 지낸 장 루이 뒤마의 조카로 파리정치대 법학과, 소르본대 철학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엘리트다. 파리바은행의 베이징·뉴욕 지사 등에서 근무하다 1993년 에르메스에 합류했다. 창업주의 6대손 40명 중 10명도 LVMH의 지분 인수가 이슈가 되자 각기 요직을 맡아 경영권 방어에 힘썼다.

에르메스의 지난해 매출은 38억달러로 LVMH(253억달러)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두 회사의 브랜드 가치 격차는 점점 줄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밀워드브라운에 따르면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는 2006년 루이비통의 가치를 100으로 했을 때 25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84에 달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