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e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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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요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랜드로버를 주로 탄다. 지난달 31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후 강원 평창, 정선, 강릉을 수시로 오가고, 현장 점검을 위해 산악지대를 자주 가야 해서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2018년 2월)까지 남은 시간은 3년6개월. 조 회장은 “아직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급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올림픽 준비에다 한진그룹 경영 현안까지 챙기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조 회장을 지난 25일 만났다. 그는 “(올림픽조직위원회가) 나에게 조직위원장을 맡긴 건 정치인도 강원 도민도 아니니까 더욱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주요 현안인 서울 송현동 호텔 건립계획과 관련해선 “우리가 계획한 건 호텔이 아닌 복합문화센터인데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며 “조직위 활동이 마무리되는 대로 복합문화센터 설립 계획을 정리해 다시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은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경기 시설입니다. 개·폐회식장을 짓는 문제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데다 공사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2017년 2월까지 지어야 하는 스피드스케이팅장 공사도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다른 준비를 아무리 잘해봤자 경기장 건물이 없으면 안 되는데….”

▷개·폐회식장 건설에 차질이 빚어진 이유가 뭔지요.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어떻게 시설을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하거든요. 여러 가지 안이 나오는데 (이 문제도) 이달 안에 결정해야 합니다. 사후활용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공사를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경기장 시설 공사는 언제까지 끝내야 하나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7년 2월까지 완공할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최 1년 전까지 공사를 마쳐야 테스트를 할 수 있잖아요.”

▷준비과정에서 다른 어려움은 없나요.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선 시설, 조직, 자금 등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이 가운데 자금은 국내 기업들이 후원사(스폰서)로 참여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KT와 영원무역(노스페이스) 두 곳만 참여가 확정된 상태입니다. 기업 후원을 통해 8000억원을 조달해야 하는 데 현재 1000억~1500억원밖에 조달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후원 요청을 한 기업이 있습니까.

“현대자동차와는 현재 얘기 중입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우리(조직위)가 필요로 하는 지원 내역을 보냈습니다. 최근엔 중국 난징에서 열린 IOC 올림픽 후원계약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후원해달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이 투자할 인센티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한진그룹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기존 인천하얏트호텔을 500실 더 늘렸습니다. 평소 (신·증축) 허가를 받을 때보다 훨씬 신속하게 인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강원도도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할 게 많을 것입니다.”

▷주경기장이 들어서는 알펜시아 경영 정상화 상황은 어떤지요.

“2011년 7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난 뒤 알펜시아에 대한 투자계획이 많이 나왔는데, 자꾸 적자를 내면서 진행이 잘 안됐습니다. 아무래도 기업이 하는 일과 공무원이 하는 일의 결과가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알펜시아는 강원도개발공사가 운영을 맡으면서 적자가 누적되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올림픽 시설유치 등을 두고 강원도 지역 간 갈등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설을 어디에 둘 것이냐 등을 두고 정치적·지역적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통에 그동안 과감하게 일처리를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이지 강원 도민만을 위한 체전은 아니지 않습니까. 초기부터 강원 도민들과 중앙정부가 그런 인식을 가졌어야 했지요. 다행히 최근 들어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직접 챙겨야 할 그룹 현안도 적지 않을 텐데요.

“대한항공이나 다른 계열사 일이 산적해 있지요. 그래서 처음엔 다른 분이 (조직위원장을) 맡아줬으면 하고 고사했는데, 기왕 맡은 이상 잘 해야 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관광객 2000만명 유치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하고요.

“일본은 과거 슬럼가였던 롯폰기를 재개발했고, 베이징도 옛 도심지를 현대적으로 개발해 문화센터로 만들었습니다. 한진그룹도 서울 송현동에 복합문화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했지요. 갤러리·박물관 등을 짓고 경복궁 옆에 4층 정도의 영빈관급 호텔을 짓는다는 구상이었지요. 그런데 일각에서 ‘7성급 호텔이다’ ‘건물 높이가 몇십층이다’며 반대가 심했습니다. 우리 계획이 잘못 알려진 것이지요. 조직위원회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가 직접 (사업 계획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호텔을 짓는 게 아니란 말씀인가요.

“호텔이 아니라 문화센터입니다. 그 가운데 호텔은 100개 정도의 객실을 갖출 뿐입니다. 또 중저가부터 고급 식당, 갤러리, 박물관을 한꺼번에 짓게 되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북촌~인사동~광화문을 잇는 서울의 허브문화센터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올해 대한항공 실적 전망은 어떻습니까.

“항공산업은 점점 수익성이 없는 사업이 돼가고 있습니다. 외국 항공사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 등을 낮추고 있는 이유지요. 또 미국 등 외국 항공사들은 저비용 항공사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고 국내에서도 저비용 항공사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변화를 예측해 저비용 항공사인 진에어를 만들어 대응했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전 세계 항공산업이 어렵다는 말씀인데요.

“해외의 많은 항공사들이 적자를 내고, 서로 합치는 추세입니다. 미국 3대 항공사도 파산 신청을 한 뒤 구조조정을 거쳐 저비용 항공사로 거듭났지요. 일본항공(JAL)도 마찬가지예요. 이대로 가다간 대한항공이 전 세계에서 가장 고비용 항공사가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