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이 투자하려 할 때 규제 대상이 되는지를 한 달 내에 알려주는 이른바 ‘그레이존(gray zone) 해소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경이 어제 보도했다. 특히 기업이 기존 규제를 대체하는 대안을 제시하면 당초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 한, 적극 수용해 두 달 내에 해당 규제를 푸는 제도까지 도입하겠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행정규제기본법에 넣어 부처 공무원들이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규제를 적극 풀 수 있게 하겠다는 게 기획재정부와 총리실의 구상이다.

의미있는 진전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 개혁을 하겠다는 전향적인 자세가 보인다. 관련법에 근거를 명시한다는 것도 잘하는 일이다. 법적 근거 없이는 공직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다고 해서 술술 풀릴 일은 결코 아니다.

기업이 공장을 신·증설할 때 어떤 규제가 적용되는지는 관련부처 공직자들이 제일 잘 안다. 무슨 규제를 풀어줘야 할지도 물론 꿰뚫고 있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규제를 못 푸는 게 아니다. 올 들어서만 이미 대한상의가 지난 3월에 67개, 전경련은 지난 7월에 무려 628개의 개선방안을 관련부처에 건의했다. 이제까지 관련부처들이 접수한 제안을 합치면 수천건은 족히 될 것이다. 기업이 대안을 내면 적극 수용하겠다고 하지만, 관련 공무원들이 규정을 재량적으로 해석하는 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면 그만이다. 명분 없는 규제는 하나도 없다.

더구나 지자체는 이번 정부 구상에서 빠져 있다. 규제가 중앙정부의 3.3배나 된다는 지자체다. 보이지 않는 규제, 손톱 밑 가시는 훨씬 더 많다. 여수산단 공장증설 문제가 녹지규제를 풀면 해결될 줄 알았지만, 그 다음에는 지자체의 각종 부담금 규제가 줄줄이 대기 중이었다. 덩어리규제를 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규제 혁파는 의지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일몰제도 규제총량제도 안 통하는 마당이다. 발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덩어리규제를 풀 수 없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영영 안 될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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