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칼날' 위에 선 대기업 임원들
대기업 임원들이 한겨울 같은 오싹한 한여름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간판 기업의 2분기 실적이 줄줄이 어닝쇼크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임원들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연말 정기 인사를 위한 임원 평가가 막 시작된 시기에 닥친 실적 충격은 공포를 증폭시킨다. 임원 30% 가까이를 감축하는 곳이 나올 것이라는 풍문도 돈다.

승진보다 정년 채우자는 세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기업소득환류세제(내년 도입, 과세 2~3년 유보) 강행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도(10월께 가이드라인 마련) 대선 공약에 따른 60세 정년시대(2016년)를 앞두고 부담은 불어나는데 기업 성장이 주춤하거나 뒷걸음질친다면 임원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최고경영자(CEO)는 그나마 고용 유연성이 있는 ‘임시직원’ 인 임원을 해임하는 고육책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50대 초반에 밀려난 전직 임원의 새 삶은 대개 험난하다.

일부 은행에선 정년(60세)까지 일하며 받는 돈이 임원급 부행장에 올라 벌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계산 아래 승진을 꺼리는 일이 벌어진다.(본지 7월9일자 A14면) 노조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과장 승진을 기피하던 노동 현장의 고질이 기업 사회 전반에 전염될 수 있다. 임원은 30대 그룹 전체 임직원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빛나는 자리다. 젊은 직장인들이 임원의 꿈을 버린다면 불행한 일이다.

별장을 수색하고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눈뜨고 놓친 검찰, 명품을 걸친 사체(死體) 신고를 받고도 단순 변사 처리한 경찰 검찰의 헛발질은 일선 간부들의 종합 판단력이 중요함을 잘 보여준다. 경영 현장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핵심 임원의 시장 감각과 순간적 현장 판단, 유연한 상상력, 마케팅 싸움은 회사의 명운을 가른다.

기업이익 환수세제인가

최경환 경제팀이 ‘지도에 없는 길’을 좇아 글로벌 경기부양 전쟁에 뛰어드는 결단을 내렸다. 기업 돈이 가계로 흐르고 투자 소비가 이어져야 성공할 수 있는 복잡 방정식이다. 하지만 재계 한편에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기업이익환수’세제라며 뜨악한 반응이 나오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다.

국민연금 등이 투자 기업에 배당 압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고치려는 건 더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이 맡긴 돈을 앞세워 민간 기업 경영에 관여하려 한다는 ‘연금사회주의’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 지분이 10%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만 54곳이다. 자율과 창의, 도전을 생명으로 한 기업 경영에까지 관치(官治)의 그림자를 드리워선 안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기 경제팀의 정책 방향을 정하는 관계장관회의에서 금융의 보신주의(保身主義)를 질타했다. 그렇다고 해서 관치에 순치(馴致)된 금융회사 경영자들이 경기 불씨를 크게 살리는 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총수가 장기 유고 상황인 SK 한화 CJ 태광그룹 등의 임원들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승패는 기업에 달렸다. 대기업에 남아나는 돈이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높은 임금을 더 퍼주거나 외국인 주주에게 많은 몫이 돌아갈 배당을 늘리라고 하기보다는 임원 보수를 더 올려주는 데 쓰라고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정년에 연연하지 않고 겁 없이 뛰는 임원들이 많아져야 한다.

유근석 편집국 부국장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