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내유보금은 나쁜 것인가
기업이 창출한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하면 당기순이익이다. 이 중 일부를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려주고 배당을 차감한 부분은 유보이익으로, 당해 연도 자본의 증가로 나타난다. 유보이익이 누적된 것이 사내유보금이다. 회계용어로는 이익잉여금이라고 한다.

경영진이 투자할 곳이 많으면 배당을 줄이고 유보이익을 늘려 이를 투자용도로 사용한다. 투자수요가 감소하면 배당을 늘리게 된다.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은 저배당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익을 유보시켜 투자수요를 충당해야 한다. 수익성은 높으나 성장성이 둔화되면 현금 여유가 생겨 배당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런 회사 주식을 소위 배당주라고 부른다.

사내유보금을 기업들이 곳간에 쌓아 놓은 돈으로 보는 잘못된 해석은 가끔씩 정치권에서 제기돼 왔다. 기업들이 돈을 쌓아 놓고 투자도 안 하고 고용도 안 늘린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쌓아 둔 것이 아니다. 공장을 신설하고 기계설비에 투자하거나, 전략적 인수합병(M&A) 등으로 이미 지출돼 유·무형자산 및 장기금융자산의 형태로 존재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 이익잉여금의 80%가량이 유·무형자산 등에 이미 투자돼 있다.

기업이 돈을 쌓아 놓고 투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현금성자산을 봐야 한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 53조원은 경쟁자인 애플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과도하다고 볼 수 없다. 현금성자산은 기업이 새로운 투자를 하거나 연구개발을 하고, 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상장기업의 자산 및 매출 대비 현금성자산 비율은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과다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사내유보금은 자본의 항목으로서 부채비율의 분모를 증가시키고 부채비율을 감소시켜 신용등급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재무구조가 건전해지면 금융위기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7년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은 500%가 넘었으며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정부는 부채비율 가이드라인을 200%로 제시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했다. 부채비율이 크게 개선된 우리 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안전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과세 내지 인센티브제도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임금 인상, 투자, 배당 등으로 유출시켜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정책구상이 나왔다.

이런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임금 인상은 이익 감소로 직결돼 현재도 저조한 추세인 기업의 수익성이 더 낮아진다. 배당 증가는 유보이익을 감소시켜 투자 감소로 연결된다. 현금성자산이 줄어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투자여력도 감소한다. 최근 하락추세인 우리 기업의 신용등급에 더욱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수년간 우리 기업들의 주가가 침체된 것은 배당성향이 낮은 것보다는 기업의 성장성 및 수익성이 하향 추세에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기업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의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배당은 기업가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시그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 노동 및 조세환경 개선을 통해 기업의 성장성 및 수익성을 높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정책 방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아지면 고용과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미래의 배당잠재력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한인구< KAIST 경영대학 교수 ighan@business.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