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배고파야 독해진다
전자업계의 쌍두마차 삼성과 LG. 삼성전자의 강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TV 스마트폰 반도체 등 대부분 품목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높다. 세계 1위 품목도 삼성이 훨씬 많다.

그러나 업계에서 LG가 세계 1위라고 인정하는 사업이 있다. 바로 디스플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50개 상품·서비스의 1위 기업을 조사해 쓴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6개 품목에서 한국이 1위를 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TV 낸드플래시메모리 D램에서, 삼성SDI는 리튬이온전지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액정표시장치(LCD)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선두로 꼽혔다.

헝그리정신이 만든 1위

역설적이지만 LG디스플레이가 업계 1위가 된 건 형제 회사인 LG전자가 삼성전자에 밀려 TV 시장 만년 2위인 점과 무관치 않다. 내부로 납품할 물량이 많지 않았던 LG디스플레이는 살아남기 위해 일찌감치 외부 고객을 찾아 나서야했다.

중국 스카이워스와 연구개발(R&D) 합작법인을 세웠고, 대만 암트론과는 패널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을’의 자세에서 외부 고객사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 제품을 만들었고, 기술과 가격 면에서 앞서 가야만 팔 수 있었다. LG와 삼성디스플레이 양사가 지난 몇 년간 경쟁적으로 투자해온 TV용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도 삼성이 개발을 연기한 것과 달리 LG디스플레이는 양산 준비를 마쳤다.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인 1999년 대기업 간 ‘빅딜’ 과정에서 LG반도체가 현대반도체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봤던 구본준 사장(현 LG전자 부회장)이 독한 DNA를 임직원들에게 심어 놓은 것도 한몫했다. 그가 경영을 맡았던 1999~2006년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1등합시다”라는 말로 “여보세요”를 대신했다. 지금은 “확실히 1등합시다”라고 외친 뒤 회의를 시작한다. LG디스플레이의 1위 비결은 ‘헝그리 정신’인 셈이다.

스페인 16강 탈락의 교훈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디펜딩챔피언인 스페인이 일찌감치 2패를 당해 16강에서 탈락한 반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무2패로 탈락했던 프랑스가 올해 약진한 것(비록 8강전에서 우승팀 독일에 0대 1로 졌지만)도 헝그리 정신의 차이다. 16강 진출 무산 직후 스페인의 핵심 선수인 사비 알론소는 “헝그리 정신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동기부여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PC 시대 승자였던 인텔이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어 모바일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시장에서 고전하며 “사업을 접어라. 그게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길이다”란 증권사들의 조롱 아닌 조언까지 받게 된 것도 ‘따뜻하게’ 지내오다 보니, 헝그리 정신을 잃은 탓이란 게 업계 지적이다.

8년째 세계 시장 1위인 삼성전자에 납품하며 살아온 삼성디스플레이는 계속된 적자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엔 삼성전자 외에 다른 고객을 찾겠다고 세계 최대 TV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 LG디스플레이를 긴장시키고 있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두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해 중국 추격자들이 넘볼 수 없는 만리장성을 쌓았으면 한다.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