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강남구·서울시의 '몽니게임'
서울지역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 개발계획’이 백지화 위기에 몰렸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벌이는 ‘어이없는 몽니게임’ 탓이다. 양측은 개발용지를 전량 현금매입(강남구)하느냐, 아니면 현금과 대물(땅)로 나눠서 매입(서울시)하느냐를 두고 2년간 사생결단으로 다투고 있다. 내달 2일까지 합의안을 내지 못하면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물거품이 된다. 도시개발의 ‘본질’을 망각한 무책임한 행정의 전형이다. 피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최악의 주거환경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또다시 깊은 절망에 빠져들고 있다.

감사 결과 제멋대로 해석

개발계획을 둘러싼 시비는 강남구가 먼저 걸었다. 서울시는 2011년 ‘전면 수용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가 6300억원에 이르는 매입비용 감당이 어렵다며 2012년 6월에 ‘환지+수용’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강남구청장은 “환지방식은 투기 목적의 토지주에게 특혜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양측은 감사원 감사까지 청구했다. 감사원은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그렇다고 서울시 개발방식이 무효는 아니다”는 결론을 냈다. 협의를 통해 진행하라고 중재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후 환지비율을 낮춘 수정안을 내놓고 강남구에 정책협의 제안을 했다. 강남구청장은 “환지의 환자만 들어가도 절대 안된다”며 9일 현재까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은 ‘3자(서울시 강남구 주민대표) 끝장토론’까지 제안했다. 강남구는 이것도 거절했다. 주민 상당수가 환지방식을 희망하고 있어 이들과 협상할 수 없다는 것.

감사원은 강남구가 주장하는 ‘특혜 우려’에 대해서도 감사 결과를 내놨다. 현재 진행단계(구역지정 고시)에서는 특혜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이런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특정 투기 혐의자에게 716억원의 특혜가 돌아간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측성 특혜 주장만으로 노후지역 개발사업의 판을 깨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서로 사정을 존중하고 협상하면 쉽게 풀릴 사안이라고 말한다. 특혜가 걱정되면 협조해서 없애면 되고,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 수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거 개선 최우선 협의해야

양측의 극한 다툼에 두 지방자치단체의 본심을 의심하는 시각도 많다. 강남구는 개포동 알짜지역에 임대단지가 조성되는 것을 싫어하는 일부 지역이기주의를 대변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울시도 강남구 반대를 명분으로 말 많고 탈 많은 노후지역 개발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고 싶은 심정이 생겼을 것이란 짐작도 한다.

오해와 억측이 억울하다면 대안을 내놔야 한다. 30년 이상 신음하는 판자촌 취약계층에 최소한의 주거단지를 신속하게 조성해주는 것은 지자체와 정부의 의무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초 개포동 재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30여가구의 철거민이 맨처음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했다. 2000년대부터 철거민을 가장한 투기 수요가 몰리며 현재는 전체 1092가구에 이른다. 이 중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187가구, 174가구는 부동산 자동차를 보유한 투기 의심 거주자로 파악된다.

도시개발(정비)사업의 본질은 ‘지속 가능한 공생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이기주의, 정치논리, 지자체장들의 과잉소신·아집 등은 절대 경계대상이다. 선진국 명품도시는 도시개발 과정의 본질을 잘 지킨다. 그래서 아름답다.

박영신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