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용두사미' 되나] 그나마 제역할?…'규제 신문고' 건의 6000건 넘어
수도권에 공장을 둔 중소기업 K사는 기존 공장 인근에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올해 초부터 정부부처에 건폐율을 높여달라고 줄기차게 건의했다. 이 회사가 공장을 지으려는 땅은 원래 준농림지역에 속했으나 도시계획이 변경되면서 자연녹지로 지정됐고, 건폐율 상한선이 40%에서 20%로 오히려 낮아져 공장 규모를 줄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K사는 담당부처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K사는 지난달 중순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개혁신문고’에 이런 사연을 올렸다. 그러자 채 하루도 되지 않아 해당부처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소관부처 협의를 통해 해결 가능한지 알아보고 연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K사 관계자는 “신문고에 사연을 올린 뒤에야 비로소 전화라도 받을 수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대통령 주재 ‘끝장토론’ 이후 정부는 규제개혁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그중 규제개혁신문고만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개혁신문고는 끝장토론 직후 국무조정실이 만든 온라인 규제개혁 건의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안건을 올리면 담당부처는 14일 이내에 건의 수용 여부를 답변해야 한다. 건의를 수용하기 어려울 경우 소관부처 기관장 책임 아래 3개월 이내에 기존 규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 특히 규제개혁신문고에 올라온 건의 처리상황은 총리에게 일일보고로 올라가고, 월별 진행상황도 전면 공개된다. 재계 관계자는 “규제개혁에 어떤 부처, 어떤 공무원이 미진하게 대응하는지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가장 겁내는 게 신문고에 담당 업무 관련 내용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규제개혁신문고가 실효성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에 규제개혁 건의도 쏟아지고 있다. 6월 말까지 신문고에 올라온 건의는 6067건에 달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