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출신 화가 김현정 씨 개인전
김현정 "연기·모델하며 배운 끼·열정…동양화에 쏟아 中 화단 도전"

“혼자 돋보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색과 선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때로는 웅크린 듯 머문 화면에서 ‘긴 호흡 긴 여운’을 맛보면 좋겠어요. 그저 눈과 마음 가는 대로 느껴주면 바랄 게 없지요.”

23일부터 내달 4일까지 서울 화동 아트링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영화배우 출신 화가 김현정 씨(35·사진)는 “내 그림이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숨결’이 됐으면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는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손꼽히는 금일미술관의 초대전도 앞두고 있다.

1999년 청바지 ‘스톰’ 모델로 데뷔한 김씨는 드라마 ‘광끼’와 ‘내 이름은 김삼순’ 등으로 이름을 알렸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연극 ‘나비’의 주인공을 맡아 3년간 캐나다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아를 발견하고 성찰해가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에세이집 ‘랄라의 외출’(위즈앤비즈)을 출간해 주목받았다.

데뷔 10년 만인 2009년 배우 활동을 접고 화가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김씨는 “어릴 때부터 가수, 연기자, 화가 등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며 “그림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에 5년 정도 출연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을 때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고민에 휩싸였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았는데, 인형치료법을 통해 제 내면아이(inner child) ‘랄라’를 만났어요.”

연기하며 배운 끼와 열정을 그림에 쏟겠다는 그는 심리 치유를 토대로 ‘랄라’를 소재로 한 한국화(동양화)에 접근했다.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아 끊기고, 오히려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도리어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극을 할 때도 번역극과 창작극은 느낌이 다르잖아요. 번역극의 대사는 왠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한국화가 꼭 창작극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는 틈나는 대로 중국과 한국박물관을 찾아 전통을 체험했고, 미술사·미술이론·미술품 감정·전통문화 등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다듬어진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16~20시간 작업에 몰두했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총감독인 펑펑 베이징대 교수와 중국 문인화가 펑치웅에게 전통 화법에 대한 도움도 받았다.

김씨는 전통을 깊숙이 파고들면서 역사와 현실을 관찰하는 동시에 우리 영혼 속의 ‘몽환의 왕국’을 설계한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고독하고 우울한 영혼의 정신사와 대면한다. 스스로를 ‘어린애 같은 30대’라 부르는 그의 작품은 내면아이를 형상화한 점 외에도 독특한 화법으로 이목을 끈다. 그는 그림 일부에 자수를 활용하는 ‘화주수보(畵主繡補)’ 화법,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붙여 수묵이 배어 나오게 한 뒤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쌍층(雙層)’ 화법 등을 고안해 작품에 활용했다.

‘묘사와 연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사다리에 올라탄 ‘랄라’가 십자가로 형상화한 바게트를 쳐다보는 작품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에서 1인 2역으로 출연했을 당시 자신이 입었던 의상을 입은 소녀상 등 근작 15점을 내보인다. (02)738-073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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