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을 돌로 쳐라"는 KBS의 왜곡
가난 질병 굴종으로부터의 탈출史
文창극은 과거사 正論 굽히지마라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정규재 칼럼] 위대한 탈출 The Great Escape : A. Deaton

삶이 갈수록 팍팍해진다는 생각은 인간의 오래된 인식 편향이다. 먹고살기 어려웠지만 인정은 있었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쓴 아널드 하우저는 왜 사람들이 과거를 아름답게 회상하는지를 화두로 삼았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다. 가난하면서 살기 좋았던 적은 물론 없다. 가난은 영아사망과 짧은 수명과 수많은 질병과 타인에 대한 비열한 계급적 굴종일 뿐이었다.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얻어맞던 흥부를 생각해 보라.

취직시즌이 오면 가난한 청년들은 재정보증인을 찾아 삼촌들과 먼친척들의 집을 눈물을 떨구며 돌아다녀야 했다. 지금 대학생들은 재정보증이라는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과거가 좋았다고 회상한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인식 문제가 중심에 있다. “오늘은 별로 반찬이 매우 좋구나”를 중얼거리며 뺑덕어미를 새 마누라로 들여앉혔던 심봉사의 돈은 어디서 생겼을까. 당연히 심청이 중국 상인에게 팔려간 대가였다. 그 심봉사가 일본군 위안부 논쟁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혹은 라이 따이한, 혹은 미스 사이공 문제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인의 허망한 이중잣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난은 언제나 약자에 대한 폭력적 지배의 체제였다. 절망이 넘치는 식민지에서 그것도 봉건적 굴종이 이중으로 지배하던 궁벽하고 억압적인 농촌에서 일어난 소녀들의 슬픈 이야기 말이다.

‘인류사의 억측적 기원’은 칸트가 쓴 작은 논문 제목이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점점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루소류의 억측적 역사관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 점점 나빠지는 역사 아닌 점점 좋아진 것으로서의 역사다. 만민 평등사회라고 제멋대로 억측한 과거는 필시 이에 대칭하는 종말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역사관을 구성하게 된다. 그것의 종합판이 바로 마르크시즘이다. 인간은 원시공산사회라는 천국에서 쫓겨나 자본주의 종말에 이르렀고 구원의 혁명을 거쳐 다시 공산사회로 복귀할 것이라는 시간관은 그런 오류의 집대성이다. 물론 이는 기독교 구원사관을 철저히 표절한 것이다.

해방 후 김일성이 나타났을 때 북한의 기독교 지식인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 중 대부분이 6·25전쟁 기간까지 남쪽으로 탈출했다. 이들을 포함해 당시 북한 인구 920만명 중 적어도 140만명이 남한으로 대탈출을 감행했다. 문창극 후보의 부모들도 그랬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주의’는 이 오래된 착각의 21세기 버전이다. 과거에는 좋았는데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은 칸트가 지적했듯이 대부분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이다. 그들은 세계의 가난과 불평등을 증명할 방법이 차례차례 사라지자 급기야 상위 1%를 대조군으로 들고나오는 용기까지 보여준다. 극단의 통계치를 쓴다는 것은 이미 학자의 양심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의 수치도 조작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통계만 조작되는 것도 아니다. 조작되는 것에는 문장도 포함된다. 예수가 말한 것은 “죄 없는 자, 저 여인을 돌로 쳐라”였다. 그런데 KBS는 앞부분을 제멋대로 잘라냈다. 그리고 예수가 “저 여인을 돌로 쳐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문창극은 그렇게 당했다. 그리고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새누리당 초선들조차 각인된 오리처럼 행동한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교수 앵거스 디턴(A. Deaton)은 2013년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이라는 부제다. 지구는 갈수록 평등해지고 있고 부자가 될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영아사망으로부터의 탈출, 굴종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 위대한 탈출의 대열에 이제 중국 인도까지 가세하고 있다.

월남인 문창극은 그 자체로 디턴적 대탈출의 증거다. 지금의 북한은 후기 조선이요 한국의 과거다. 지식의 훼절 아닌 웅변이 청문회장을 울리길 바란다.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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