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칼리 피오리나 前 HP회장 "리더에게 꼭 필요한 건 사람에 대한 이해…'공감능력' 키워야"
“새롭게 시작하려는 기업을 막는 것은 각종 규제와 복잡한 세법, 그리고 관료주의다.”(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회장)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30일 방한 중인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회장과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을 초청해 리더십과 기업가정신에 관한 대담을 가졌다.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이뤄진 대담은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피오리나 회장은 이날 대담에 앞서 고려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위미노믹스(womenomics) 시대와 성공하는 리더의 조건’에 관해 특강하기도 했다.

○사회=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의 형태는.

▷피오리나 전 회장=복잡해져가는 세상이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빨라지고 모든 것은 연결되는 추세다. 문제는 세상에 쌓여 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필요한 리더십은 제한된 자원을 적절한 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끄는 능력이다. 단순한 지시나 관리 차원이 아니다.

▷이두희 학장=동의한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리더가 더 어려워진 이유다. 이제 리더에게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갖도록 이끄는 능력이다.

○사회=리더십을 기르기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피오리나 전 회장=두 가지 교육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직업교육이다. 엔지니어가 공학을 배우거나, 경영인이 비즈니스 학위를 따는 등 직업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 한 가지는 사람에 대한 이해다. 이 학장이 공감 능력이라고 표현한 능력이다. 나는 대학 시절 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사람에 대한 통찰력은 세계를 여행하거나,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일하면서도 얻을 수 있다.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 직업교육은 중요하지만, 리더십은 그 이상의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녹아들어야 한다.

▷이 학장=피오리나 전 회장이 성공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바탕에 철학과 역사 등 인문학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문제는 단순한 지식 교육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창의력을 높일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컨대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학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테드(TED·세계적 지식 콘서트)’와 같은 형식의 강연을 여는 것이다.

○사회=이 같은 리더십 교육만으로 충분할까.

▷피오리나 전 회장=교육은 리더 양성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리더란 도전과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이 학장=단순히 그 사회의 리더만을 양성하는 리더십 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리더를 키우는 교육도 중요하다. 5년 전부터 아·태지역 23개 주요 대학 총장들과 함께 ‘아시아태평양리더스(APL)’를 창설해 운영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를 통해 각국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기르고, 이웃 나라를 이해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올해는 브루나이에서 7월에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듯 여러 국가의 대학들이 협력하는 것 역시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사회=여성 리더를 기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피오리나 전 회장=여성과 남성은 똑같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여성이 유리한 면이 있다. 여성은 협동에 뛰어난데, 이 능력은 21세기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이 리더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여성 자체가 리더로서 결격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리더로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용기를 줘야 한다. 여성 리더십의 출발점은 남성들의 이해다. 여성 리더가 똑똑하고, 실적을 내며, 특정 분야에서는 남성보다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을 인정해줘야 한다.

▷이 학장=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간과된 측면이 있다. 여성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유리천장’ 문제도 심각했다. 여성 대통령이 나온 지금, 한국사회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기업들이 더 많은 여성 리더를 뽑고 있고,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왼쪽)과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가운데)이 리더십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를 맡은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김기남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knk@hankyung.com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왼쪽)과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가운데)이 리더십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회를 맡은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김기남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knk@hankyung.com
○사회=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갖춰야 할 리더십은.

▷피오리나 전 회장=모든 성공한 리더나 회사, 나라가 겪는 가장 큰 도전은 시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언제 성공을 자축하고, 언제 변화를 결정해야 하는지 말이다. 변화를 거부한 회사의 대표적인 예는 코닥이다. 코닥은 설립된 지 100년이 넘은 거대 미국 기업이었지만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 다른 모든 것이 변할 때 따라가지 못하면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두 번째 예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20여년간 MS는 세계를 호령했다. 하지만 오늘날 MS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의혹이 서려 있다. 내가 몸 담았던 HP도 4~5년 전 연구와 마케팅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더 한 명이 아무리 영리하고 천재 타입이어도 이제는 소용없다. 많은 사람이 같은 곳을 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리더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이 학장=비즈니스 경쟁에서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예전에는 컴퓨터는 컴퓨터 회사끼리, 출판사는 출판사끼리 경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오래 전 삼성전자와 구글이 경쟁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리더는 미래를 예측하지만 변화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리더의 새로운 어려움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사회=최근 미국에서 기업가정신이 위협받고 있다.

▷피오리나 전 회장=미국에서 많은 사업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10년간 새로 생겨난 비즈니스보다 사라진 비즈니스가 더 많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사업을 하기에 환경이 더 나빠진 게 문제다. 세제가 까다로워졌고 규제는 복잡해졌으며 연방 정부는 관료주의를 등에 업고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규제와 관료주의는 가능성을 억누르고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것을 방해한다. 근본적인 개혁에 착수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관료주의를 척결하고 세제를 단순화하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이 학장=그래도 미국이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다는 얘기를 한다.

▷피오리나 전 회장=미국이 여전히 기회의 땅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는 등 경제 후퇴의 한복판에 기업가정신의 쇠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회=일자리 창출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피오리나 전 회장=대기업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뽑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HP도 차고에서 시작한 소기업이었다. 레스토랑이나 세탁소 등 지역 기반의 소규모 창업도 중소기업에 해당될 것이다. 미국 경제가 후퇴하는 이유로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를 북돋워 작은 회사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 학장=대학은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다. 학내 스타트업을 지원해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칼리 피오리나는 누구 HP 대대적 개혁 이끈 美 여성 CEO의 신화

칼리 피오리나는 미국 비즈니스계에서 유리천장을 뚫은 ‘최고의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는 인물. 중소기업의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5세에 미국 통신사 AT&T에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비즈니스 역량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한 그는 1999년 휴렛팩커드(HP)의 최초 여성 CEO로 영입됐다.

HP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고 컴팩과의 합병을 성사시켜 찬사를 받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여성 CEO’에 6년 연속 올랐다. 2005년 HP 회장직을 사임한 뒤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에서 사외이사로 일했다.

정계 진출을 결심한 그는 공화당의 캘리포니아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2010년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재는 비영리법인 ‘칼리피오리나 엔터프라이즈’ 회장을 맡고 있다.

정리=김보영/박병종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