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아파트 다단계 판매 '유감'
경기 김포에서 올초 아파트 분양에 나선 한 건설사는 사흘간의 지정계약기간 동안 10%밖에 팔지 못했다. 건축비 조달마저 어렵게 되자 회사는 이른바 ‘조직분양’ 처방을 내렸다. 조직분양은 판촉 인원을 대대적으로 투입해 인해전술식으로 아파트를 파는 것을 말한다. 투입한 인원은 400명이었다. 경기 고양의 한 복합단지(500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조직분양 4개월 만에 계약률은 90%대를 돌파했다.

분양시장에서 조직분양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조직분양을 하지 않는 건설사가 없을 정도다. 전통적인 아파트 판매 방식은 모델하우스 집객을 통한 분양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점점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일반화된 인해전술식 조직분양

자세히 뜯어보면 조직분양 구조는 다단계 판매와 닮았다. 본부장이 정점에 있다. 본부장은 5~6개 팀을 거느린다. 팀장 밑에는 5~10명의 팀원이 소속돼 있다. 건설사로부터 판매를 의뢰받은 분양대행업체는 본부장에게 판매를 맡긴다. 본부장은 팀장에게, 팀장은 팀원에게 물건을 내려주는 구조다.

팀원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돈이다. 아파트 한 채의 분양 수수료는 1000만원 안팎이다. 이 돈의 30% 정도를 분양대행사가 가져간다. 본부장과 팀장도 10%씩 챙긴다. 나머지 50%가 팀원 몫이다. 한 채를 팔면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생긴다. 악성 미분양 물건의 수수료는 한 채에 1억원도 넘는다. 판매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유다.

판매방식은 보험영업과도 비슷하다. 초보자는 친구 등 지인을 공략한다. 자기도 한 채를 산다. 실력이 쌓이면 일반 소비자 대상 전화영업에 나선다. 적응하지 못하는 팀원은 바로 도태된다.

문제는 조직분양이 고비용구조라는 점이다. 높은 판매수수료는 결국 계약자에게 전가된다.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건설사가 분양가를 낮추려는 것을 막기까지 한다고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했다. 지금의 분양가 수준에서 팔아줄 테니 수수료를 더 얹어달라고 대놓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고비용 마케팅 피해자는 소비자

일부 분양대행업체는 조직적으로 미분양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정계약기간에는 적극적으로 영업하지 않는 것이다. 판매수수료가 조직분양의 3분의 1 이하여서다. 이들은 조직분양으로 전환된 뒤 본격적으로 영업에 뛰어든다. 실수요자를 찾아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마케팅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완전 판매 가능성도 높다. 미분양 아파트는 1000만~2000만원의 계약금만 있어도 살 수 있다. 중도금은 무이자나 후불제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건설사가 지원한다. 입주 때 분양권값이 오르면 문제가 없다. 만약 내릴 경우 집을 포기하는 계약자들이 나오게 되고 건설사는 다시 분양을 해야 한다. 원래 분양물량의 75%를 재분양하는 사례도 최근 나왔다.

일부 분양대행업체들은 가벼운 불법도 개의치 않는다. 현수막으로 교통 요지의 길거리를 도배하거나 전봇대나 지하철에 전단을 붙인다. 이걸 보고 연락해오는 이들에게 매수를 권한다.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지 않은 현수막 탓에 한 달에 1억원 안팎의 과태료를 꼬박꼬박 내는 분양대행업체도 여럿 있다.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사들여 막무가내로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뿌려대는 영업조직도 적지 않다.

미분양 해소에 급급한 건설사가 조직분양을 그만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수요자가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조성근 건설부동산부 차장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