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한경포럼] 하이테크, 로테크…현대사회

수도꼭지마다 콸콸 깨끗한 물이다. 온수도 전기도 365일, 24시간 대기다. 이젠 와이파이도 사방천지다. 주택은 마천루 경쟁이고 중국 오가는 비행기만 매일 100편이 넘는다. KTX는 10분마다 천리길을 질주한다. 새벽까지 쌩쌩인 대중버스는 부담도 없다. 세월호도 쌌다. 로맨틱한 제주도의 마이카 드라이브가 쉽기만 했다. 급팽창해온 일상의 편리들이다. 무엇보다 저비용이었다.

하이테크(high tech) 세상은 부지불식간에 신천지처럼 펼쳐졌다. 주거·교통의 첨단화는 옛일이다. 놀이동산과 온갖 레포츠, 극한 스포츠까지 하이테크의 신세계에는 재미도 넘친다. 불과 반세기 전, 최상류층이나 즐겼던 게 여가였다. 민속 축제 때나 겨우 맛봤던 놀이였다. 이젠 재미도 놀이도 주말의 일상이다. 우회적 혜택도 대단했다. 화목에서 석탄, 가스와 원전으로 진화하면서 이 땅의 산은 단군 이래 최고로 우거졌다. 강물도 다시 맑아진다. 그래서 축복만의 하이테크 세상일까.

로테크에 주목하라는 大경고

일상화된 하이테크는 고속 성장의 거울이다. 80㎏ 쌀가마니가 지난해 17만원. 1억원 이상 월급쟁이는 재작년에 41만5000명이었다. 연수입 1억7000만원, 즉 천석꾼이 이 땅에 기십만 명이란 얘기다. 자영업자까지면 더 많다. 한 고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했다는 그 천석꾼이다. 연수입 18억원이면 백미 1만가마다. 팔도에 몇 명이라는 만석꾼도 이젠 수천 명이다. 새파란 20대가 웬만한 직장만 잡으면 당장 200~300석꾼 부농급이 되는 기가막힌 현대다. 그만큼 속도내온 하이테크의 물결이었다. 깊은 그늘도 적지않지만 소비로는 중상류층까지 천석꾼 이상으로 살게 됐다. 유학을 보냈고 해외여행에 나섰다. 다 좋다. 천석꾼은 더 늘려야 하고 보다 나은 하이테크 세상도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대폭발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는 멋진 신세계로 달려온 한국 사회에 쓰나미다. 미국에 9·11만큼이나 충격이다. 9·11이야말로 하이테크 시스템이 로테크(low tech) 한 방에 박살났던 현대사의 이변이었다. 지상 최대의 번화가 맨해튼, 첨단의 110층, 철두철미 항공 보안…. 이런 하이테크의 철옹성이 과도 한 자루를 움켜쥔 테러범, 즉 로테크에 무너졌던 거다.

불가피한 하이테크시대 생존법

세월호는 서둘렀던 하이테크 세상에 냉혹하게 경고했다. 아니 보복이다. 대충대충! 건성건성! 빨리빨리! 너도나도! 밤낮없이! 멋진 신세계는 그렇게 급조될 수 없었다. 기초공사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볼트 하나하나에 더 땀을 흘렸어야 했다.

하이테크 아닌 데가 없다. 건물 교량 페리만이 아니다. 과도한 대출과 레버리지 투자, 정작 신용은 경시된 카드 남발은 생활화된 금융의 하이테크였다. 기록으로 남든 말든 SNS, 스마트통신도 단지 일상이다. 하지만 편리에 취해 속출한 깡통주택도 개인정보 유출도 우습게 봤다. ‘약간’의 부작용이거니 작은 오류거니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이테크의 메가트렌드를 막을 수도 없다. 그저 사방의 지뢰를 피해 살아남아야 하고 다음 세대에도 잘 넘겨줘야 한다. 하이테크 시대의 생존법은 로테크의 보완이다. 로테크야말로 별것도 아니다. 일단은 기본에 충실하기다. 레버리지 대출보다는 적금에, 스킨스쿠버나 행글라이딩으로 마구 덤비기보다는 기초체력 강화에, 첨단 금융도 좋지만 제조업에 주목하는 식이다. 로테크 집중이 하이테크 몰입보다 어렵다는 자각이 그 출발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