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상인들 속앓이

봉제공장 "모자·티셔츠 단체주문 없던 일로"
오피스 식당가, 회식 줄어 밤 9시면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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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거래한 OO상사인데, 무조건 반품해 달래. 창고에는 1억원어치가 쌓여있고 대출 만기는 코앞인데….”

지난 22일 밤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의 한 선술집.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A사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켰다. 바닥을 한참 내려다본 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털어놨다. A사장은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학교 등이 단체 주문하는 티셔츠, 모자 등을 주로 생산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족을 부양해 왔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진 이후 반품 요청이 쏟아지면서 빚더미에 앉을 판이 됐다. 티셔츠와 모자 등을 두 달 전부터 생산해 차곡차곡 창고에 쌓아뒀지만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취소되는 바람에 판매를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계약금 10%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A사장이 떠안게 됐다.

< 한산한 명동 >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면서 내수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23일 서울 명동거리는 평소에 비해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한산한 명동 >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면서 내수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23일 서울 명동거리는 평소에 비해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동대문 봉제타운 “우리도 피멍”

세월호 참사 이후 동대문 일대 봉제타운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들이 봄철 행사를 줄줄이 취소한 데 이어 정부가 전국 학교에 ‘1학기 수학여행 금지령’까지 내리면서 기존 계약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 새 일감도 뚝 끊겼다. 동대문 의류상 B씨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심정을 떠올리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어 참고 있지만 ‘죽고 싶다’고 절박함을 호소하는 이웃들이 한 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동대문 패션타운 일대에서 완제품을 실어나르는 퀵서비스 기사들과 봉제공장의 임시직 노동자 등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상당수가 아예 출근도 못 하고 있다. 역시 봉제공장이 몰려있는 대구 섬유산업단지와 기념품을 취급하는 행사용품 전문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상인들은 이번 여파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봉제업체 사장은 “단체 주문을 받아 두세 달 전부터 계획을 짜놓고 공장을 돌리던 중대형 공장들은 벌써 여러 곳이 문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

○음식점 저녁 고객 80% 줄기도

22일 밤 9시께 서울 중구 다동의 음식점 ‘다동화로’. 테이블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이 식당의 김철범 대표는 “평소 밤 9시면 1층은 말할 것도 없고 2층까지 자리가 다 차는데 요즘엔 1층도 다 못 채운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예약 손님들이 줄줄이 취소하고 술을 드시는 손님들도 너무 슬퍼서 술맛이 안 난다고 한다”며 “지난 주말까지는 가게 TV에 뉴스속보를 틀어놓았지만 손님들이 못 보겠다고 해서 이제 스포츠 중계를 틀어놓는다”고 했다.

10분여 지난 뒤 인근의 남포면옥은 이미 영업을 접는 분위기였다. 냉면을 먹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종업원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9시반께 근처 호프집 레벤브로이는 500㎡가량 되는 홀에 손님은 5~6명씩 온 두 팀뿐이었다. 종업원들은 평소 이 시간대엔 최소 절반 이상의 테이블이 차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손님이 뚝 끊겼다고 전했다. 택시기사 유광진 씨는 “밤 11시~새벽 1시가 피크타임인데 1주일간 손님이 절반 아래로 줄었다”며 “세월호 사고 이후 늦게까지 술 마시는 사람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림동의 한 한식당에선 23일 저녁 예약손님이 12팀이었는데 10팀이 취소했다. 식당 주인은 “저녁 손님이 대부분 취소하는 것은 이번주 들어 계속되고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여행·항공·호텔 예약 취소사태

하나투어는 4월 한 달 동안 수학여행 취소자가 3000~4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세월호 사고 직후엔 1700여명이 취소 요청했으나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투어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학생 단체의 경우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항공업계 역시 대규모 수학여행 취소 사태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은 수만명, 아시아나항공은 1만6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항공업계도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수학여행 취소 때 발생하는 환불 수수료를 받지 않을 방침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은 4월 말~5월 초 예약된 객실 가운데 100개가 취소됐다. 취소 전화는 21일과 22일에 집중됐으며 4~5월 중 예정됐던 행사 13건이 취소되면서 관련 객실이 빠졌다고 호텔 측은 설명했다.

박준동/임현우/김명상 기자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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