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최근 잇따른 금융사고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면서 은행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각종 사고의 1차 책임이 은행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부 직원의 일탈 행위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당장 눈에 띄는 대책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 통감한다는 은행들 "사실 우리도 답답하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재한 회의에는 국민·신한·하나·우리·외환·농협·한국씨티·한국스탠다드차타드(SC)·기업·산업은행장 등이 참석했다.

사실상 한국의 주요 은행 수장이 모두 호출된 것이다.

최 원장은 "신뢰를 잃은 금융회사와 경영진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고, 퇴출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은행장들은 하나같이 '반성', '죄송', '책임 통감' 등의 용어를 써가며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은행들은 내부 감시망 강화로 직원 사이의 돈거래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인사에 반영하는 성과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등 약속 지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한 은행장은 "직원들의 윤리의식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며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것인데, 무조건 윽박 지르기보다는 젊은 세대에 맞는 교육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 부행장은 "사실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현재에도 별 문제가 없다"며 "시스템을 점검하면서 윤리의식을 강조하고 더 긴장해 일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임원은 "결국 직원의 윤리의식을 높이고 투명한 업무처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은 실적 스트레스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막고자 올해 성과평가체계(KPI)의 신규고객 유치 실적 목표를 약 40% 줄였다.

하지만 은행 경영진 사이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은행 부행장은 "직원들 사이에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결국 은행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은행장들 혼내는 컨셉"…금감원에 곱지않은 시선도
금감원의 금융기관 '질타'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은행 부행장은 "어제 행사는 결국 금감원이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혼내는 자리였다"며 "금감원도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벤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은행의 감사는 "그동안 사고가 있을 때마다 해온 얘기를 종합해서 말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고, 다른 은행의 임원은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얘기하는데 금감원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3일에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 회장들을 불러 "금융권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최근 계속된 금융사고로 금융에 대한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이 이런 우려를 표명한지 한 달 만에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계열사인 은행들의 CEO를 불러모아 똑같은 훈수를 둔 셈이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종합검사를 종전 백화점식 검사에서 벗어나 금융회사의 경영상황에 대한 위험요인 발굴에 집중하는 정밀진단형 경영실태평가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금감원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이 기관에서도 잊을 만 하면 각종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감원 간부가 사기 대출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에는 임직원들이 뇌물을 받고 저축은행의 비리를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동양그룹 사태'로 인해 대규모 국민 피해가 발생하자 감독 당국인 금감원에 비난이 쏟아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어제 은행장들과 가진 회의는 다 같이 통렬히 반성하자는 취지"라며 "금감원을 포함한 금융권 모두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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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고유선 김승욱 기자 zheng@yna.co.krcindy@yna.co.krksw0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