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1년도 안가는 中企취업 대책
서울에 있는 A 특성화고(옛 실업계고)를 졸업한 김모씨(19).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8월 한 중소 금형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첫 직장생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출근했다. 하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학교에서 3년간 컴퓨터를 활용한 설계 기술을 배웠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생산라인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약발' 1년도 안가는 中企취업 대책
중소기업 취직자에게 3년간 근로소득세 50%를 감면해주는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제도였다. 월급이 적어도 업무에 대한 보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버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정부가 15일 발표한 ‘일자리 단계별 청년고용 대책’에서 중소·중견기업 장기 근속자에게 3년간 최대 300만원의 근속장려금을 주기로 했지만 이 돈을 받으려고 더 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단다. 차라리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갈까 고민 중이다.

김씨의 고교 친구들도 이미 대부분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A고 기계과의 올해 졸업생은 50명. 이 가운데 40명이 졸업과 함께 직장을 잡았지만 80% 이상이 1년도 안 돼 회사를 그만뒀다. “열악한 대우도 문제지만 전문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 탓에 실망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특성화고 학생들은 졸업 후 5년 반 동안 평균 네 번의 직장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해당 기업에는 세금을 깎아주는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에게 정책 ‘약발’이 먹히는 기간은 1년 남짓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퍼주기식’ 지원 대책이 중소기업 현장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졸 취업자에 대한 각종 지원금 확대다. 우선 내년부터 중소·중견기업에 취직한 고졸 청년 근로자에게 3년간 최대 300만원의 근속장려금이 지급된다. 군 입대에 따른 청년들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신성장동력이나 뿌리산업(금형 등 기초기술 산업) 관련 중소·중견기업에 입사한 고졸 취업자에게 1년 근속 때마다 매년 100만원씩, 3년간 최대 300만원이 지급된다.
'약발' 1년도 안가는 中企취업 대책
또 중소기업 청년 인턴(만 15~34세 미만)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인턴에게 지급하는 취업지원금이 인상되고 지급방식도 달라진다. 현재 지원액은 제조업 생산직 220만원, 전기·전자·정보통신업종 종사자 180만원이다. 업종이 제한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지원 대상이 전 업종으로 확대되고 특히 제조업 생산직은 지원금 규모가 300만원으로 늘어난다. 다른 업종 지원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급방식은 현재 인턴 수료 후 50%, 정규직 전환 6개월 후 50%가 지급되지만 앞으로는 정규직 전환 1개월 후 20%, 6개월 후 30%, 1년 후 50%가 지급된다. 정규직 전환 후 근속기간이 길수록 지원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또 기업은 군 복무를 마친 고졸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근로자 1인당 2년간 최대 600만원(월 최대 25만원)의 ‘군 입대자 고용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군 제대 고졸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2년간 인건비 10%에 대해 법인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청년 취업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늘려주기로 했다. 세법을 고쳐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다니던 청년이 병역을 마치고 원래 직장으로 복귀할 경우 근로소득세를 5년간 깎아주기로 했다. 현재는 최초 취업 후 3년만 근로소득세를 50% 감면하는데 앞으로는 군 복무기간만큼 근로소득세 감면 기간이 추가로 늘어나는 셈이다.

고졸 중소기업 재직자는 이자소득세(원금의 14%)가 면제되는 재형저축 의무가입기간을 7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 ‘청년희망키움통장’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가 지금보다 50만개 늘어날 것이란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잠재 성장률이 둔화되고 기업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정부 정책만으로는 청년 일자리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정부가 청년 일자리 사업에 투입하는 예산은 2009년 1조2118억원에서 지난해 1조7903억원으로 4년 동안 47.8%나 늘었지만 같은 기간 청년 고용률은 40.5%에서 39.7%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의 핵심인 각종 지원금에 대해 “퍼주기식 대책은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청년일자리사업 평가’ 보고서를 보면 2011년 정부의 인턴지원금(월 최대 80만원 지원) 사업으로 채용된 청년 근로자는 3만2079명이었다. 이 중 인턴기간이 끝난 뒤 정규직으로 전환돼 채용이 유지된 근로자는 2만171명이었다. 이들을 고용한 기업에는 6개월간 근로자 1인당 월 65만원이 지원됐다.

그러나 지원금 지급이 종료된 뒤 계속 일을 하는 근로자는 1만2084명에 그쳤다. 지원금을 받는 기간에만 일하고 이후 직장을 그만둔 근로자가 62.3%에 달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2011년 1만2000명가량을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만들기 위해 인턴지원금 1456억500만원과 취업지원금 477억7500만원 등 1933억8000만원을 쏟아부은 셈이 됐다. 1인당 1611만원꼴이다.

하현선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관은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해에만 2조원 가까이 투입했지만 실제 고용 증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없다”며 “무조건적인 재정 투입식 일자리 시업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용석/김주완/김우섭 기자 hohoboy@hankyung.com